블루아카 소설 (Pixiv)/단편

여성공포증 선생님과 무거운 감정의 학생들 part 2

무작 2025. 3. 28. 15:00

작품 링크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4052453

 

작가 : レオ


작가의 말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novel/22824186)의 뒷부분입니다.
전개가 단조로워지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만, 그 탓에 선생이 상당히 정서불안입니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또한, 이어지지 않는 평행 세계 같은 이미지이므로, 읽고 싶은 학생 부분만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여성공포증 선생님과 무거운 감정의 학생들 part 2


어둠 속에서 숨이 거칠어진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등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는 무겁게 귓가에 울린다.

그것이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몸의 중심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이 덮쳐온다.

돌아보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발이 땅에 꿰매진 것처럼 꼼짝할 수 없다.

『선생님.... 어째서 도망가는 거야?』

등에 차가운 목소리가 꽂힌다.
귀에 익은, 그 목소리.
믿었던, 학생의 목소리.
돌아볼 수 없다.
돌아보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분명, 또......

 

"왜..... 싫어.... 그만해.....!"

등을 차가운 손이 기어오르는 듯한 감각에 휩싸여, 억지로 끌려간다.
손목을 강하게 잡혀 있다.
옷이 점점 벗겨진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의 어둑한 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 있는 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하아.... 하아...... 또, 그때의......"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이마를 누른다.
온몸에 달라붙은 땀의 감촉이 불쾌해서 샤워를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지만, 침대에서 움직일 기력이 나지 않는다.

"또.... 꿈이....."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일.
제자였어야 할 학생에게, 습격당한 그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그저 패닉에 빠졌던 그 순간.
도움을 청해도, 도망치려 해도, 어쩔 수 없었던 그 순간.

"..........읏"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떨림을 억누른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과거의 그림자는 금방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이제...... 싫어......."

누군가에게 상담하고 싶다.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걸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내가 학생에게 습격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여성에게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
그런 걸, 도대체 누구에게.....

"....샤워하자"

생각만 해도 몸이 굳는다.
분명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어른인 내가, 이런 약점을 보일 수는 없다.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탈의실로 향한다.

이 시간대에 샤워를 하는 것이, 이제 나의 루틴이 되어 있었다.

".........."

확실하게 문을 잠근다.
몇 번이고 열리지 않는지 확인하고, 철컥철컥 자물쇠를 돌린다.
괜찮아.
닫혀 있어.

"..........."

그래도 눈을 뗀 순간 누군가가 침입할 것 같아서, 몇 번이고 문고리를 당겨 확인한다.

어디선가 침입당하는 망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탈의실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는다.
보이지 않는 틈새.
아무것도 아닌 벽걸이 뒤.
수건 걸이의 그림자.
조금이라도 불안한 요소를, 하나씩 점검한다.

"........좋아"

그렇게 중얼거려도, 가슴의 고동은 진정되지 않는다.

식은땀을 흘리는 건지, 축축한 감촉이 피부에 달라붙는다.

그것을 떨쳐내듯, 재빨리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부딪힌다.
처음에는 아플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그 차가움이 오히려 기분 좋게 느껴진다.

이 시간이, 지금의 내가 유일하게 '정상'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후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항상 머릿속 한구석에 달라붙어 있다.

고개를 숙인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샤워 커튼이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뛴다.

뒤를 돌아본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당연하다.
이런 곳에, 누가 있겠는가.

".......나 뭐하는 거지"

나의 불안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알고 있다.

그래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

샤워를 멈췄다.
물소리가 멎은 탈의실에, 묘한 정적이 감돈다.
물방울이 피부를 타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린다.

순간의 고요함이 가슴 깊은 곳에 희미한 공허함을 만들었다.

수건을 집어 들고, 젖은 머리를 닦으며 다시 한번 문 잠금을 확인한다.
열리지 않는다.
괜찮아.
알고 있다.

".....빨리 입어야지"

조금 차가워진 피부에 수건이 달라붙는 감촉을 싫어하듯, 재빨리 몸을 닦는다.

준비해둔 속옷을 입고, 셔츠 단추를 하나씩 잠근다.

"......괜찮아. 평소대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바지에 발을 넣는다.

부드러운 천이 다리를 감싸 안고, 몸이 조금은 나에게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소매를 정돈하고, 거울을 본다.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얼굴을 한번 쓰다듬는다.

고민할 시간 따윈 없다.
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

".....좋아"

작게 중얼거리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는 어른.
그리고, 선생.

루틴의 시간은, 끝이다.


 

오키 아오이의 경우


총결산, 그것은 세간에서 일반적으로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해.

서류를 모으고, 정리하고, 전부 처리해야 하니까.

좋아해서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지.

물론 나 역시 즐겁다고 생각하며 하는 건 아니야.

업무상 해야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그런데,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되고 나서부터, 그것은 조금 특별한 시간이 되었어.

처음에는, 선생님께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신경 쓴 적도 있었어.

귀찮은 일이고, 선생님을 더 바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싫어하신 적이 없어.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아오이랑 함께라면 즐거워"라고.
언제나 나를 흔들어 놨지.

그래서, 어느샌가 나도 총결산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총결산을, 연기?』

귀를 의심했어요. 눈앞의 선생님은 마치 무언가에 겁먹은 듯이 눈을 피하고 있었어.

"으, 응. 안 될까....?"

평소와 다른, 어딘가 어색한 목소리.

지금까지의 선생님 모습과는 다른, 무언가 불안정하고 침착하지 못한 느낌.

『별로 상관없지만.....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지금까지 그런 적은..... 이라는 말을 참았어.
가슴속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선생님의 말을 기다렸지.

"최근 좀 바빠서.... 음... 응.... 그래서...."

말끝을 흐리는 말과 표정.
아아, 뭔가 사정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래. 괜찮아지면, 다시 연락 줘.』

짐작도 가지 않는 이유를 찾으며, 선생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어.
복도에 나온 순간, 어깨에 힘이 빠지고 숨이 막힐 것 같았어.
...어쩔 수 없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천천히 곱씹듯이, 사정을 예상했어.
형편이 안 좋다면, 다음에 다시 물어보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은 서둘러 돌아갔어.

하지만, 선생님의 "다음"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지.

"미안해, 지금 좀 바빠서..."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

"지금 다른 학교에 있어서...."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속이 차갑게 식어갔어.
또야.
또 미뤄.
바쁜 건 어쩔 수 없다……는건 알고 있어.


하지만, 벌써 몇 번째야?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애매한 부정의 말들.
만날 때마다 멀어지는, 나에게 있어 특별한 예정.
또, 다음, 그런 말 이젠 듣기 싫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선생님, 적당히 좀 해.』

목소리에 감정이 배어 나왔어.

냉정하게 이야기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

"아, 아오이.....? 갑자기 와서, 무슨 일이야?"

펜 끝을 멈춘 선생님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작고, 어딘가 겁먹은 목소리.
가슴속에, 묘한 위화감이 퍼져 나갔어.

선생님의 반응이 안쓰러워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
그래도, 더 이상 말을 멈출 수가 없었어.

『알고 있잖아? 총결산이라고, 총결산. 지금까지는 조금 봐줬지만, 이제 한계야.』

따지듯이 말을 던졌어.
선생님은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 말을 찾고 있었어.

나오는 말은, 어차피 언제나 똑같겠지.

"어, 음.... 지금은, 좀....."

역시.
애매한 대답.
언제나와 다름없는, 위로 같은 말.
나는, 더 이상 그걸 듣고 싶지 않다고.

『귀찮으면 귀찮다고, 확실히 말해줘. 나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차가워진 목소리에, 스스로도 놀랐어.
아닌데.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귀, 귀찮다는 건.... 아니...야....."

선생님의 말은 힘없이 사라져 갔어.
내 안에서 외면하고 있던 생각이 되살아났지.
그럼, 그런 거라면.
남은 이유는, 이제.....

『...........내가, 싫어진 거야?』

순간, 방에 정적이 찾아왔어.
밖의 잡음조차도, 지금 이 순간,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굳어진 목 안쪽에서,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렸어.
선생님은 조금 눈썹을 찌푸린 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미안해. 오해하게 만들어서"

『.....아니야?』

뜻밖의 말에 희망이 보였어.
내가 이렇게 단순했던 걸까.

"아오이가 싫을 리 없잖아. 정말..... 정말, 바빴을 뿐이니까"

어딘가 힘없고, 미안한 듯이 말을 이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꽉 조여 왔어.
전부, 내 착각이었다고?

『그, 그랬구나.... 미안해. 나는, 그만....』

말이 나오지 않았어.
전부 내 착각이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 뿐이라서.
나는 뭘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요.
어째서 선생님을 믿어주지 못했던 걸까.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선생님은, 더욱 상냥한 말을 덧붙여 줬어.
내가 잘못했는데, 선생님이 사과하고 있어.

가슴 아파.

어째서 선생님께 이런 식으로 대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좀 더 냉정하게, 선생님을 믿었어야 했다고 스스로를 책망했어.

"..........."

『...........』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둘 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그저 시간만 흘러갔어.
그런 정적을 선생님이 깨뜨렸지.

"....지금부터, 할까?"

말은, 생각보다 가벼운 울림이었어.
가슴속이 조금 따뜻해졌어. 기다리는 동안의 무거움이, 훅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응……?』

놀라서, 그만 얼빠진 목소리를 내버렸어.
선생님은 조금 곤란한 듯 미소 짓고,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서류를 가리키면서,

"그…… 역시, 총결산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도와줬으면 해서.... 안 될까..."

선생님의 시선이 드디어 나에게 돌아왔어.

아까까지 느껴졌던 거리감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어.

계속 외면당했던 불안감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했지.

『후훗......물론, 도와줄게. 하자, 총결산.』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나왔어.
계속 기다렸던, 이 순간.
우리의, 평소 모습.

그것을 겨우, 되찾은 기분이 들었어.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지.
실제로 작업을 시작해보니, 선생님의 손길이 어딘가 어색했어.

펜을 쥔 손이 떨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류를 훑어보는데도, 어딘가 멍한 것 같았어.

평소라면 술술 진행되었을 작업이, 몇 번이고 멈췄어.

『....선생님. 아까부터 실수가 잦은 것 같은데.... 괜찮아?』

걱정이 되어, 말을 걸었어.
선생님은 잠시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어. 그 표정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지.

"어, 어라? 아하하..... 미안, 오랜만이라 그런가...."

그렇게 말하며 웃는 선생님의 얼굴은, 어딘가 무리하고 있는 듯 했어.

사라졌던 불안감이, 다시 마음속 깊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지.

『.....괜찮아. 시간은 있으니까, 천천히 하자고?』

덮어버렸어.
느꼈던 위화감에, 착각이라는 라벨을.
재촉할 생각은 없어.
조금씩, 시간을 들여 해나가면 되니까.
그러면, 분명, 평소의 두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을 덮어씌웠어.
하지만, 선생님은 평소의 선생님이 아니었어.
페이지를 넘기는 손도 느렸고, 서류에 적은 글자를 몇 번이고 고쳐 쓰면서,

펜이 몇 번이고 멈추고, 책상 위에 시선을 떨어뜨리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것 같았어.

"......미안. 도와주고 있는데도...."

선생님의 목소리는 작고, 어딘가 힘이 없었어.
나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배어 나왔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에 대한 짜증을 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신경 쓰지 마.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누구에게나 있잖아?』

진심을 담아, 선생님을 격려했어.
하지만, 내 말에 대답하려던 선생님은, 어딘가 지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

『........일단 좀 쉴까. 커피 타 올 테니, 선생님은 좀 쉬고 있어.』

가슴속에 있는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듯이, 제안했어.
선생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
눈은, 감은 채로.

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는 소리가, 탕비실에 조용히 울려 퍼졌어.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나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어.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선생님은 바빴다고 했어.
그러니, 지금은 조금 지쳐있을 뿐이야.
총결산은 하루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지.
오늘은, 우연히 그런 날일 뿐이야.

『....응. 괜찮아, 괜찮아...』

컵을 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어.
따뜻한 커피의 김이, 내 뺨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어.

평소보다 조금 더, 단맛을 더한 커피.

지친 선생님께는, 이 정도가 딱 좋을 거야.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집무실로 향했어.
들려온 것은, 조용한 집무실에 울려 퍼지는 깊은 한숨 소리였지.

"........하아"

원래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어야 할, 그 한숨.
선생님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내뱉은, 진짜 숨결.

선생님이 정말로 느끼고 있는 것이, 그 순간에 담겨 있었어.

......아아, 그런 거구나.
나로는...... 안 되는 거였구나.

『.....이만 돌아갈게.』

갑자기, 말이 울려 퍼졌어.
말을 한 것은 나였고.

"에?"

선생님이 당황한 듯이, 나를 바라봤어.
그 얼굴을 봐도, 이제 되돌릴 수는 없어.
나는 서두르듯이 말을 이었지.

『미안. 급한 일이 생각났어. 그러니, 오늘은 이만 가볼게.』

"아.... 그, 그렇구나. 응, 알았어...."

예정 따윈 없다고.
선생님과 만나는데 예정 같은 걸 잡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도저히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가 없었어.

선생님의 그 지친 얼굴을 보고, 더 부담을 주는 것이 두려웠어.

선생님은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봤어.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컵을 책상 위에 놓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왔어.

『그럼..... 다음에, 또』

돌아보지 않고, 말을 남겼어.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내가 제일 잘 알지...

 

키리후지 나기사의 경우


『어머.... 너무 일찍 도착했네요.....』

오늘은 당번인 날. 마침내 직접 만든 일력 달력까지 만들었을 정도로, 저는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고, 평소보다 더 공들여 화장을 하고, 과감하게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일찍 도착해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런 시간이 있다는 게 기쁘다'는 마음이었지만....

『어떡하죠.....』

예정 시각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린 이 상황에, 저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빨리 도착하면, 선생님께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됩니다.

『뭐.... 그래도, 모처럼이니까요.....』

마음속으로 변명을 하며, 망설임과 주저함을 달랩니다.

선생님과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 업무 시작 전의 조용한 시간에 잡담이라도……

그렇게 생각하니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샬레의 문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후훗,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기대에 가슴을 부풀리며 학생증을 갖다 댑니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한 걸음 내딛자, 은은한 조명이 나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나와 선생님.
단둘만의 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엘리베이터가 조용히 올라가는 동안, 저는 작은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화장은 완벽해요.

평소보다 아주 살짝 색감을 더한 복숭아색 립스틱.

이런 특별한 날에만 사용하는, 저만의 특별한 색이죠.

『.......후훗』

긴장과 기대로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져 갑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에 맞춰, 후 하고 숨을 골랐습니다.

복도에 울리는 내 발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가볍게 들리네요. 기분이 들떠서일지도요.

선생님의 집무실이 보이자, 기대는 더욱 부풀어 올랐습니다.

특별한 약속도 없는 아침, 이렇게 일찍 찾아온 저에게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기대되네요.』

조금 차분하지 못한 손으로 문손잡이에 손을 댑니다.

살짝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확실하게 도와드릴게요.』

방 안에는 평소의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뭔가 달라요.

"어라.....? 아, 안녕 나기사. 엄청 빠르네?"

제 인사에, 선생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떨구고,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로 꺼낼까 망설여질 정도의, 아주 미미한 위화감.
저만이 아는, 선생님의 순간적인 행동.

『네, 네. 조금 일찍 도착해 버려서....』

입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엮어냅니다.

준비했던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는 말은, 방금 전의 위화감에 덮어쓰여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나기사를 이렇게 빨리 만나서 나도 기뻐. 아, 차 타 올게."

선생님은 바로 일어서서 안쪽의 탕비실로 향했습니다.

그 뒷모습을 배웅하는 동안, 저는 가슴 속에 솟아오르는 이상한 불안감을 억누르려고 필사적이었습니다.

저 미소.
저 목소리 톤.
평소와 같나?
아니,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건가?
왜?
원인은?
어제? 지난주? 아니면, 훨씬 이전……?

너무 깊게 생각한다고 웃어넘길 수 없어, 겁 많은 제 머리는 계속 같은 생각만 맴돕니다.

눈을 마주쳐 주지 않았던 순간의, 그 미묘한 간격이 도저히 잊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제, 탓......?』

가슴 깊은 곳에 찌릿한 통증이 스칩니다.

선생님이 저를 피하다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이 싫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정말 싫어하고 있다면?
만약, 저의 존재를 폐라고 느끼고 있다면?

『그럴..... 리가...』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쥡니다.
이것은 저의 나쁜 버릇이에요.
쓸데없는 불안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때, 그렇게 배웠어요.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상냥해요.
분명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탕비실에서 돌아오는 선생님의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찻잔을 든 그 모습을 보자마자, 제 가슴에 작은 안도감이 퍼진다.

"기다렸지, 나기사. 뜨거우니까 조심해."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찻잔을 받아 들면서, 애써 자연스럽게 대답했어요.

하지만, 목소리 톤이 어딘가 불안정한 것은, 저 자신도 알고 있었죠.

선생님은 제 앞에 찻잔을 살며시 놓고, 미소 짓습니다.

그 미소에 안도한 것도 잠시, 또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져 다시 가슴이 술렁입니다.

선생님은, 제 앞 의자에 앉았습니다.

찻잔에 가볍게 손을 대면서 미소 지었습니다.

그 행동은, 언제나와 같은 온화함을 풍기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옆에 앉아 주실 텐데.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그 거리감이 편안했는데.
오늘의 선생님은, 일부러 눈앞에 앉네요.
하지만, 그것을 말로 꺼내는 것은, 제멋대로인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나무랍니다.
분명, 그냥 변덕이겠죠. 그렇겠죠.

괜찮아..... 괜찮아.....

눈앞에 있는 선생님은, 저를 향해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말끝마다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어요.

그걸 모른 척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저.....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나요?』

"......엣? 무, 무슨..."

선생님의 움직임이 멈춥니다.
불안한 듯한 눈동자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오해라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왠지, 선생님과의 거리가 느껴져서요....』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서 불안이 솟아오릅니다.

『저, 저기! 제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저 자신도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오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아니야."

『네.....?』

"뭔가, 오해하게 만들었나 보네. 오늘은 좀 피곤했을 뿐이지, 나기사가 뭘 한 건 아니야."

『그,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큰 실례를....!』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제 모습에, 선생님은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을 보인 후, 훗 하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온화한 눈동자에 바라보여지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하게 따뜻해집니다.

"....괜찮아 괜찮아! 나도 잘못했으니까.... 자, 얼굴 들어."

선생님은 부드럽게 손을 흔들어, 저를 달랩니다.

그 상냥한 목소리에,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겨우 말을 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저에게 미소 지은 채 찻잔을 집어 들어,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 동작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제가 이 사람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일까요.

『.......후우.』

조금 뜨거운 차가 목구멍을 넘어가요.

은은하게 풍기는 차 향기가,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을 풀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안심했어요....』

"그, 그래?"

『저에게 있어서, 선생님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이, 지금이라면 입 밖에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선생님이 찻잔을 든 손을 순간 멈추네요.

미묘하게 눈을 내리깐 그 모습이, 제 가슴을 희미하게 술렁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고 싶지 않았어요.

『에덴조약 때, 저는 선생님께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의 도움이 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에요......』

마음 깊은 곳에 간직했던 마음을, 하나하나 정성껏 엮어냅니다.

눈앞의 선생님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리고 나서 조금 미소 지었습니다.

"……고마워. 기쁘네."

그 말에, 순간 마음이 들떴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미소는 어딘가 멀고, 마치 제 마음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진심이라고요!』

무심코 목소리가 커졌어요.

농담이라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일어서서, 선생님의 손에 살며시 닿았습니다.

『선생님께는,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해요! 제 마음은 진심이에요! 그러니까……』

그 말을 끝내기 전에, 선생님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습니다.

"윽……!"

선생님은 순간적으로 손을 거뒀습니다.

그 동작이 커서, 의자가 희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그 표정에, 명백한 공포의 빛이 떠오릅니다.

『……선, 생님……?』

목소리가 떨리고, 목이 타는 듯해요.
제가, 선생님을 궁지로 몰았어요.
그렇다고 순식간에 이해해버렸어요.

"아, 미, 미안…… 놀라서…… 그, 아무것도 아니니까."

선생님이 순간적으로 수습하려는 듯 미소 짓습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경련하고 있었고, 제 마음에 차가운 것이 퍼져나갑니다.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단지, 제 행동이 선생님을 상처 입혔다는 사실이, 무겁게 짓누릅니다.

선생님의 겁에 질린 표정이 뇌리에 박힙니다.

누구보다 소중하고, 존귀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이렇게나 두렵게 만들어 버리다니.

『죄송합니다..... 바로, 돌아갈게요....』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가슴 깊은 곳이 욱신욱신 아파요.

선생님은 뭔가 말하고 싶어 입을 열었지만, 이내 닫으시네요.

『..........윽』

도망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저 "괜찮아"는 분명 거짓말이겠죠.

『선생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돌아간다고 했을 텐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요.

선생님은 곤란한 듯 웃으십니다.
하지만, 방금의 떨림을 본 이상, 저는 이미 알아차렸습니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다고.
분명,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누구인가요.....?』

선생님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선생님의 손끝은, 아직 희미하게 떨리고 있네요.
그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선생님을 상처 입힌 사람은 누구인가요....!?』

선생님의 어깨가, 움찔하고 움직입니다.
하지만, 말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고마워, 나기사. 날 위해 화내 줘서.... 하지만, 난 정말 괜찮으니까....”

미소 뒤에 범인을 숨기면서,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십니다.
선생님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숨기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선생님을 구할 힘이 없다는 것.

 

『.......그런가요.』

테이블 위의 찻잔으로 시선을 떨굽니다.

완전히 식어버린 그것이, 지금의 우리와 겹쳐지는 것 같았어요.

『오늘은, 실례했습니다.......』

일어서서, 짐을 챙깁니다.

평소와 같은 움직임일 텐데, 가슴 깊은 곳에 서서히 차가운 것이 퍼져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멈춰세우지 않았어요.

『……또, 당번 날에.』

애써 밝게 말하려 했던 목소리는, 몹시 공허했습니다.

".....응."

선생님의 얼굴이, 끝없이 멀게만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옵니다.
이 거리는, 좁혀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저는 비밀에 닿을 수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구두 소리가 무미건조한 복도에 울려 퍼집니다.
아아, 역시 오늘은 일찍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쿄야마 카즈사의 경우


처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건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고,

다음으로 떠오른 건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 버린 걸까」 하는 현실이었다.

 

『.....윽, 아.....』

손끝이 떨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온몸의 핏기가 가신다.

목구멍 안쪽이 아프다.
뱃속이 뒤집히는 듯한 메스꺼움이 덮쳐 온다.
심장이 뛸 때마다 온몸을 혐오감이 휘감는다.

『왜..... 어째서......윽』

말로 뱉으면, 모든 것이 현실이 되어 버릴 것 같아서.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겁먹은 눈동자.
작게 떨리는 입술.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
그것을 억누르는 나의 손.
선생님의 공포를 확실한 것으로 만든, 이 몸.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뇌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윽.....으.....!』

가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왜, 그런 짓을......』

내 손을 노려본다.
강하게, 강하게, 손톱을 세운다.
깊게, 깊게, 파고든다.

하지만, 아무리 상처를 내도 내가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선생님의 공포도, 상처도, 무엇 하나도.

『.......윽 죽어....! 죽어....!』

힘껏 머리를 벽에 부딪친다.
둔탁한 통증이 온다.
하지만, 그것조차 부족하다.

이런 몸, 썩어 문드러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어째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어째서 아직 숨을 쉬는 거지?

『선생님.......』

나는 선생님을 덮쳤다.
싫어하는 선생님을 억지로, 성욕의 배출구로 삼았다.

『사과해야 해......』

툭, 하고 말이 흘러나왔다.

사과할 자격 같은 건 없는데.
용서받을 리 없는데.

그래도——

『사과해야 해..... 사과해야 해....!』

그렇게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용서받을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사과해야 한다.
이 죄를 짊어지고, 앞으로도 살아가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샬레로 향하는 길을 걸으며, 나는 주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소를 나누고, 바쁘게 오가고 있다.

『.........』

묘했다.
너무나도, 위화감이 있었다.

「선생님이 습격당했다」는 소문이, 어디에도 없다.

그런 짓을 했는데도, 아무도, 아무것도 모른다.
선생님에 대한 불온한 화제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왜......?』

보통이라면, 무언가 소문이 났을 텐데. 발키리가 나를 잡으러 와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아무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날 밤은, 정말로 존재했던 걸까?

발밑이 흔들린다.
풍경이 일그러진다.

『윽.....그럴 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전부 꿈이었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

무섭도록 편리한 망상이, 머리를 스친다.
발걸음을 멈춰 버리면, 되돌아갈 것 같았다.
나는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샬레의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 속이 죄어오는 듯한 감각에 휩싸인다.

사과할 수 있을까.
만나 줄까.
나 같은 게, 이제 와서 선생님 앞에 서도 괜찮은 걸까.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손끝이 차가워진다.
그래도, 이미 여기까지 와 버렸다.
망설이며, 나는 인터폰에 손을 뻗었다.

『선생님.......』

손끝이 떨린다.
그래도, 눌렀다.

딩동.

정적이 찾아온다.
기다린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윽』

선생님은 받지 않았다.
대신, 기계 음성이 울렸다.

[....카즈사 씨. 당신을 선생님과 만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에?』

사고가 정지한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만나게 할 수 없다고?
나를, 선생님과?

『자, 잠깐 기다려 주세요.....! 저..... 저는, 그저——』

사과하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건가?

[....선생님을 덮치셨죠.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윽, 그런......』

무기질적인 문 앞에서, 나는 그저, 망연자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기질적인 말이, 몇 번이고 귓속에서 메아리친다.

그렇다.
나는, 선생님을 덮쳤다.
선생님을 상처 입혔다.
선생님을 망가뜨렸다.
그 사실에, 변명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사과하고 싶어요......!』

목소리가 떨린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쥐어짜낸다.

『저는.... 사과해야 해요! 선생님께...... 사과해야......!』

문을 두드린다.
그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무기질적인 음성이, 차갑게 울릴 뿐.

[....선생님은, 당신의 말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럴 리 없어!!』

소리쳤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소리쳤다.

『선생님은....... 선생님은.....윽』

정말로 그런가?
선생님은 내 말 같은 건, 정말로 필요 없는 건가?
나는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 사과하려는 건가?

가슴이 죄어온다.
아프다.
괴롭다.

『그럴 리가, 없어........』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닿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세요.....』

나는 모른다.
선생님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선생님의 괴로워하는 모습만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뇌리에 새겨져 있다.

겁먹고 있었다.
떨고 있었다.
내 손을 뿌리치려 하고 있었다.

『윽........』

상상하는 것만으로, 위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 든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선생님은 여성과의 대화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당신이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돌아가 주세요]

『......윽, 하아.....윽, 하아.....』

가슴이 답답하다.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다.

어딘가 울고 싶어하는 내가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를 악물었다.

 

나는 가해자다.
나는 죄인이다.
내가 울 자격 같은 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선생님의 겁먹은 얼굴이, 몇 번이고 뇌리에 되살아난다.
떨리는 목소리가, 귓속에 달라붙어 있다.
그 순간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윽, 젠장......!!!』

무언가를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해도, 의미가 없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선생님을 상처 입혔다.
그것은, 아무리 시간이 흐르든, 무엇을 하든,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발도 가지런히 놓지 않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과해야 해.
그 일념으로,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모모톡을 연다.

「선생님」

손가락이 떨린다.
보내야 할 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

사죄?
변명?
후회?

어떤 것을 골라도, 싸구려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나는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손가락을 멈춘다.
이 뒤에 이어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변명 같은 건, 필요 없다.
후회하고 있다니, 일부러 말할 필요 없다.

내가 한 짓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사과하게 해 주세요.」

단지 그것만 입력하고, 나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전송 완료 표시.
그것을 보고,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적어도, 나는 선생님께 말을 전했다.

이제는, 선생님이 읽어 주기만 하면.....

『.........』

화면을 응시한 채, 숨을 삼킨다.

 


읽음 표시가, 뜨지 않는다.

1분.
2분.
5분.
10분.
몇 번이고 화면을 연다.
몇 번이고 확인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도, 손가락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뇌가 거부하기 전에, 모모톡 설정을 열고 있었다.

검색창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글자를 입력한다.
「모모톡 차단 확인 방법」

곧바로 몇 개의 글이 표시된다.
닥치는 대로 열고, 스크롤하는 손끝이 땀에 젖는다.

[상대방의 아이콘이 회색으로 되어 있으면, 차단의 가능성이 높다]
[메시지를 보내도 읽음 표시가 뜨지 않고, 통화도 연결되지 않는 경우, 차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시도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윽, 그럴 리 없어…… 그럴……』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부정하면서, 새로운 계정을 만든다.

적당한 이름을 입력하고, 신중하게, 몇 번이고 틀리지 않도록 확인하면서——

선생님의 ID를 입력했다.

「사용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하!』

웃었다.
마른 웃음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새어 나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나, 차단당했구나.

 


잘려 나갔다.
거절당했다.
내 말은, 닿지 않았다.

『윽......장난, 치지 마.....!』

스마트폰을 벽에 던지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움켜쥔다.
가슴 속이 아프고, 숨이 막혔다.

『장난치지 마......윽!』

모든 게, 자업자득이라는 거, 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대가라는 거, 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나도——

『죽고 싶어.......』

선생님에게 거절당했다는 현실이, 나를 조인다.

무겁고, 깊고, 차갑게, 나를 짓누른다.

마음속 희망의 빛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만날 수도 없다.
메시지조차 보낼 수 없다.
즉, 관여하지 말라는 것.

『......윽, 하....하하.....』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되지?
어떻게 하면 속죄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지?

이미 늦었다.

그렇다.
이미 늦은 거다.

『........』

나는, 너덜너덜하게 울면서,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며칠이 지났다.
아무것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커튼도 계속 닫아 둔 채.
바닥에 뒹구는 스마트폰 화면은, 이제 며칠째 보지 않았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저,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매일.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선생님......』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금세 사라져 간다.

선생님은 이미, 나를 거절했다.
사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하염없이 후회를 끌어안은 채, 이대로 썩어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벌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딩동.

『.........』

인터폰이 울렸다.

『이런 시간에.... 누구.....?』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도, 왠지 현관으로 향한다.

우편함에는, 한 통의 봉투가 들어 있었다.
발신인은——

『선생님.....?』

심장이, 단숨에 뛰어오른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연다.
안에는,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카즈사에게」

「이런 식으로 미안해.
정말은 제대로 전하고 싶었지만, 그게 어려워졌어.」

눈으로 훑을 때마다, 가슴이 죄어온다.
선생님의 글씨는, 한없이 다정하고.
한없이 멀었다.

「모모톡 말인데.... 정말 미안해. 아로나랑 프라나.....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싯딤의 상자가 멋대로 차단해 버려서.... 내가 의도적으로 카즈사를 거절한 게 아니야.」

『에.....?』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선생님은, 나를 버린 게 아니었어?

그럼, 그럼——

「그리고...... 그날 일.
그건 사고야.
그러니까,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사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윽』

목구멍 안쪽이, 꽉 조여온다.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다.

 


「그러니까, 카즈사.

 

내 일, 그냥 잊어줘.


선생님이」

 

 


마지막 한 문장이, 나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잊으라고?

잊으라니, 뭐?

나는, 선생님을 망가뜨렸잖아?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라고?
이제 관여하지 말라고, 그런 거야?

『그런 거...... 그런 건.....』

뚝뚝 눈물이 떨어진다.
선생님은 나를 용서하려는 걸까?
하지만, 그건, 단지 나를 멀리하기 위해서?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납득.... 할 수 있을 리가.......!』

이 편지는,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거절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윽, 선생님.....윽』

무릎을 꿇은 채, 종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려, 편지 끝을 적셔 간다.

『윽......으......』

이것이 답이겠지.
모든 것이 너무 늦었고.
나는 선생님을 잊어야만 한다.
더 이상, 내가 어떻게 발버둥 친다 해도——

『그런 건...... 싫어......』

용서받을 수 없다.
용서받을 리 없다.
하지만, 잊는다는 건, 더더욱 무리다.

『.....으윽.....흑....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었다.
오열하며, 눈물로 엉망진창이 되면서, 그저 계속 울었다.

『선생님.....흑.... 선생님.....!』

외치듯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이제, 닿지 않는다.
아무리 울어도, 외쳐도.
선생님은, 이제——

『.....싫어.... 싫어....윽!』

뛰는 심장이, 답을 외친다.

이럴 거였으면, 그런 식이 아니라.
제대로 좋아한다고 말할걸...

 

 

시라누이 카야의 경우


『오늘도 오셨나요?』

투명한 아크릴판 너머로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야 오지, 약속했으니까」

『……정말 꼬박꼬박 오시네요.』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 행동은, 나의 예전 행동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뭣하러 오신 건가요?』

「으음…… 카야랑 얘기하러 왔달까?」

『뭐에요, 그게. 정말 악취미인 어른이네요.』

아크릴판에 가볍게 손가락을 미끄러뜨린다.
투명한 칸막이.
선생님과 나 사이에 있는, 넘을 수 없는 경계선.

『……하아. 매일매일 질리지도 않고. 한가하신가요?』

「으…… 그치만, 카야라면 나도 안심할 수 있고……」

『그,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정말, 보람도 없네요……!』

아무래도 그는, 학생에게 습격당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여성이 무서워졌다고 한다.
뭐, 그런 식으로 대했다면 언젠가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저도 여자인데요…… 에둘러서 저를 모욕하시는 건가요?』

「그런 의도는 없어!? 이건 카야가 나를……」

『알고 있어요…… 농담도 안 통하나요?』

「……정말! 당황하니까 그만해……」

그의 그런 비밀을, 왜 내가 공유하게 되었는가. 답은 간단했다.

「……그래도, 정말 고마워. 나를 "싫어"해줘서……」

『……정말, 감사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시라누이 카야는, 샬레의 선생님을 싫어한다.

그 한 가지 이유로, 나는 그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

이성으로부터의 연애 감정을, 그는 매우 싫어하는 듯했다.

『선생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는군요.』

「응, 싫어하지 않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이, 가슴 깊은 곳에 둔탁하게 울렸다.

——미움받을 리가 없다.
나는, 선생님을 상처 입히지 않으니까.

『……그런가요. 저는 싫어하지만요.』

나는, 옅게 웃었다.

선생님은 나를 믿고 있다.
나만큼은, 선생님을 상처 입히지 않는다.
나만큼은, 선생님에게 손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생님은 안심하고 여기에 온다.
내 앞에서만큼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제가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면, 어쩌실 건가요?』

선생님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린다.

「그, 그건……」

창백해지는 선생님을 보고,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하아…… 농담. 두 번째에요. 제가 당신 같은 인간을 좋아하게 될 리가, 없잖아요?』

「……정말, 심장에 안 좋다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아, 그래요.
그를 상처 입히지 않는 것이, 나의 유일한 가치였죠.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이야기 하실 건가요? 이제 화젯거리도 다 떨어졌는데.』

「글쎄……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그게 뭐가 재밌다고…… 화젯거리 한두 개쯤은 준비해 오세요.』

가벼운 말을 던진다.
나에게는, 그것이 요구되고 있다.

허세를 부리고, 고집불통이고.
연애 감정을 품지 않고.
이상한 부담도 갖지 않아도 되는.
선생님이 싫어하는, 시라누이 카야를.

선생님 앞에서는, 연기해야만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바에는, 선생님의 앞날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편이 조금은 낫겠네요.』

「어, 걱정해 주는 거야?」

『설마요. 성가신 어른을 빨리 쫓아내고 싶을 뿐이에요.』

배려 깊은 말도, 근사한 특별함도.
나에게는 요구되지 않는다.
투명한 칸막이 너머로 오가는 대화는, 가벼운 농담과 비꼬는 말의 교환이어야 한다.

 

「……정말, 한심한 이야기지. 하아…… 어쩌지……」

『우선 태도를 고쳐야겠죠. 솔직히, 당신에게도 잘못은 있잖아요?』

「……나, 피해자인데? 과실이라는 거야?」

『뭐, 듣고 있다보니 그렇네요.』

「……그런 걸까나」

선생님은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는다.
그 얼굴은, 어딘가 납득하는 것 같아서.
분노를 억누르는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뭐, 착각한 저쪽이 절반 이상 잘못했고요. 선생님이 이렇게 된 것을 공표해 버리면, 악당은 완전히 저쪽이 되겠죠. 보복해 보시는 건 어때요?』

「그건…… 별로, 하고 싶지 않달까.」

선생님은 끊어진 인연의 끝에 시선을 떨군다.
장난치지 마.
어째서, 당신만 손해를.

그런 말을, 억누른다.

『……마음대로 하세요.』

무력한 자신에게, 분노를 느껴요.
이런 곳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녀석을 매달아 버렸을 텐데.

이런 곳에 묶여,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선생님. 시간 다 됐습니다]

한 학생이, 면담실에 들어온다.

그것은 한때 나의 말이었던, 공안국장이었다.

「아…… 그, 그렇구나. 벌써 그런 시간인가……」

[네. 이 이상의 면회는, 선생님이라도……]

거짓말이겠지. 그의 희망을 들어주지 못할 기관 따위, 이 키보토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시 이 뒤에 식사에라도 초대하려는 것이겠지.

『겨우 오셨나요. 슬슬 지루해하던 참이었어요.』

[……방위실장. 당신의 처우는 선생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 발언은 어떨까 싶군요]

『호오, 질투인가요. 미친개도 상당히 회유되었군요. 목줄이라도 채우는 건 어때요?』

물어뜯으려 한 것일까.
선생님 곁에도 서지 못할 녀석이.

[……선생님, 가시죠. 발밑 조심하세요]

「으, 응. 고마워……」

정중하게 다뤄지는 선생님에게, 얼마간의 동정을 보낸다.
저런 대응, 선생님은 바라지 않을 텐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애완동물이다.

『그럼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내일 또, 만나러 올게. 약속이야?」

늘 하던 대화를 나눈다.
싫어하는 나와, 만나고 싶어 하는 선생님.
나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나쁜 뽑기를 뽑은 것이겠지.
왜냐하면——

『어머, 정말인가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세 번째, 지?」

『……잘하셨어요. 가셔도 좋아요.』

나의 농담은, 그에게는 전해지지 않으니까.



코사카 와카모의 경우


『다, 당신....! 이것은.....』

「응. 물론, 와카모만 괜찮다면 말이지만....」

눈을 비비고, 뺨을 꼬집고, 꿈인가 의심하고, 끝내는 제 머리마저 의심했습니다.

그만큼 눈앞의 서류는 저의 꿈 그 자체였으니까요.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계약서]

의뢰인 :[샬레의 선생]
피계약자:[       ]

계약 내용:
본 계약에 있어, 피계약자는 의뢰인의 개인 호위를 담당하며, 이하의 조건을 준수하는 것으로 한다.

1. 호위 대상:[샬레의 선생]

 

2. 호위 범위:
 ・의뢰인의 신변 경호 (교내외를 불문하고, 상시)
 ・의뢰인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한 신속한 대응

3. 동행 의무:
 ・의뢰인의 허가가 없는 한, 피계약자는 의뢰인 근처에 상주할 것
 ・긴급시를 제외하고, 일정 거리(반경 1미터 이내)를 유지할 것

4. 무력 행사 제한:
 ・의뢰인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만, 적절한 대응을 할 것
 ・의뢰인의 허가를 얻지 않은 방법으로의 대응은 금지함

5. 계약 기간:
 ・본 계약은 무기한으로 하며, 의뢰인의 사망, 혹은 피계약자의 희망 시에만 종료함

의뢰인 서명 :[샬레의 선생]
피계약자 서명:[      ]

계약 체결일:○○○○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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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로! 괜찮으시겠사옵니까....!?』

무기한 호위 계약.
당신과 생애를 함께하는, 실질적인 결혼.
그것이, 제 서명 하나로 손에 들어옵니다.

너무나도 지고한 미끼에, 저의 사고는 오히려 냉정해졌습니다.

『이, 이 부분! 잘못 쓰신 것이 아니겠지요!? 정말로, 정말로 맞는 것인가요!?』

「어..... 응, 전부 맞아. 아무것도 안 틀렸는데....」

당신의 목소리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하여. 이 계약의 중대함을, 착각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저는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본 계약은 무기한으로 하며, 의뢰인의 사망, 혹은 피계약자의 희망 시에만 종료함」

피계약자의 희망 시.
즉, 제가 싫다고 했을 때.
.....당신을 돌아가시게 하는 것도, 제가 계약을 파기하는 것도.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계약은 처음부터 잘못됐습니다.

계약을 맺는 순간, 당신은 「코사카 와카모」라는 존재와 평생 살게 됩니다.
그런 계약을, 당신께서 스스로 제안하시다니....!

『부, 부디 맡겨주시옵소서! 미력한 와카모,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지켜드리겠나이다!!!』

「저, 정말...? 다행이다.... 고마워, 와카모....」

그렇게 말한 당신의 얼굴은, 어딘가 안심한 듯하여.
거절할 리 없는데, 하고 조금 초조해집니다.
아아.... 하지만, 이제부터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군요....

『하아..... 꿈만 같사옵니다.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고동치는 가슴을 누르며, 저는 눈앞의 계약서를 바라봅니다.

거기에는 당신의 단정한 필체로, 이미 서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끝에는 샬레의 정식 인장이 찍혀 있어, 형식상의 계약이 아님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거. 여기에 사인해 줘.」

그렇게 말하며, 당신이 펜을 내밀면.

『......읏!』

긴장으로 목이 막힐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위 계약이 아닙니다.
당신과 일생을 함께하는, 신에게 맹세하는 것과 같은 의식입니다.

손 떨림을 억누르며, 신중하게 펜을 집습니다.
당신의 이름 옆에, 저의 이름을 씁니다.
한 획, 또 한 획, 정성스럽게, 신중하게.
마치 이 계약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증표인 것처럼——

[코사카 와카모]

『.......후훗♡』

다 쓴 순간, 심장이 거세게 뜁니다.
펜을 놓고, 손끝으로 살며시 자신의 이름을 어루만집니다.

당신의 것이 되었다는 증표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내 호위, 잘 부탁할게?」

그 말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당신께서, 저만을 의지해 주신다는 게.
그것이, 무엇보다 기뻐서——

『네! 이제 평생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아하하.... 마음 든든하네.」

당신이 짓는 미소.
그 미소는, 너무나도 다정했습니다.

「정말로.... 고마워. 이런 일, 와카모한테밖에 부탁할 수 없어서....」

이미 기쁨에 들떠 있는데도, 당신은 저를 기쁘게 하는 말을 연이어 하시네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확인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 소녀의 마음이랍니다?

『이토록 멋진 계약, 키보토스 전역의 학생이 지원할 법한데.... 다른 후보자는 없었나요?』

있더라도 쟁취하겠지만.
이라는 말을 숨기며, 당신께 여쭤봅니다.

조금 고민한 후 돌려준 당신의 답변은, 백 점짜리 였습니다.

 

「.....와카모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달까.」

『그, 그러셨군요..... 실로,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얼굴이 저절로 헤실거립니다. 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질색할 정도로.
하아..... 어찌 이리 행복할까요......

『그건 그렇고.....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요. 그 점은 변함없지만, 의문의 씨앗은 있습니다.

호위 같은 형식은, 당신께서 강하게 바라지 않으셨을 터.

「......요즘, 흉흉하니까. 방범이야, 방범.」

그렇게 말한 당신의 얼굴은, 어딘가 불안해 보입니다.

당신께만 보이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시군요....! 안심하세요! 어떠한 위협이라도, 제가 철저히 배제하겠습니다!』

당신의 혜안에 틀림은 없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든, 저는 당신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응, 고마워. 그럼, 바로 순찰 갈까.」

『네!』

앞으로 펼쳐질 빛나는 나날에, 마음을 그리면서.
저는 당신의 뒤를 따랐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저는 정말로, 계속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당신 옆을 걷고, 당신 뒤에 서고, 당신께서 주무실 때도, 저는 곁에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는 당신 맞은편에 앉고, 일하는 동안에도, 이동할 때도, 항상 시야 안에 당신을 담아둡니다.
필요로 여겨진다는 행복에, 저는 취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

문득,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특히, 그것이 여성이었을 때.
뒤로 돌린 당신의 손이, 아주 약간 떨리고 있다는 것을.

『......기분 탓일까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피곤하신 걸지도 모른다」는 기우도, 「바쁘신 걸지도 모른다」는 안이한 답도,

당신 곁에 있으면 틀렸다는 것을 알아버립니다.

그렇기에, 저의 위화감은 쌓여갑니다.

누군가 다가올 때마다, 어깨를 움츠리는 것.
학생과 스쳐 지나갈 때, 내 뒤로 숨는 것.
호위 이상의 일을 시켜주지 않는 것.

그러한 작은 위화감들이, 저에게 천천히 윤곽을 잡게 했고, 마침내 저는 답을 찾았습니다.

『.....여성 공포증?』

검색 결과에 걸린, 그 답은.
묘하게 현실감을 띠고 있어, 가슴이 차갑게 식는 답이었습니다.

무언가가, 있었던 거겠죠.
제가 당신과 계약을 맺기 전에.
당신께서 저에게 호위를 부탁하신, 그 이유의 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단 하나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녀석이 있다는 걸.

 


『용서 못 해......』

확신했습니다.
당신은 여성을 두려워하고 계세요.
그것도, 단순한 거부감이 아닌.
닿는 것조차 거절할 정도의, 강한 거부 반응.

당신은 숨기려 하고 계십니다.
무언가를.
저에게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 「무언가」를 한 녀석은 누구죠?

가슴 속이, 싸늘하게 차가워집니다.

당신께서 호위를 부탁하신 이유.
그것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지켜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언제 어떤 때라도 곁에 있어 달라」고.

즉——

 


『......당신.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사옵니까?』

복수해야 할 여자가 있다는, 것.

「에?」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잠깐, 와카모.」

일어선 당신이, 제 소매를 잡습니다.
꽉, 필사적인 힘으로.

『.....금방, 끝내겠습니다.』

「......끝낸다니, 뭐를?」

당신이 불안한 듯 저를 올려다 봅니다.
그 눈동자를 보고, 망설임이 생겼습니다.

『....사소한 용무입니다. 당신께서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니오니, 안심하세요.』

원래대로라면, 바로 얼버무리고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한순간 늦었습니다.
그런 약간의 틈으로, 저의 다정하고 현명한 주인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간파하셨습니다.

「......와카모.」

당신의 목소리가, 아주 약간 떨리고 있어요.

「그만둬.」

그 한마디에, 제 발걸음이 멈춥니다.

「그만둬, 와카모...... 나, 그런 거...... 그런 거 해줬으면 하지 않아.」

그 말에, 감정이 흔들립니다.

『어째서 그러십니까.....!? 저의 역할은, 당신의......읏!』

목소리에 열기가 오릅니다. 스스로도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릅니다.
그것은 격정이라 하기엔 너무나 날카롭고, 이성을 불태우기엔 너무나 조용한 분노였습니다.

왜 감싸는 건가요.
왜, 그렇게 연약하고, 겁에 질린 얼굴을 하는 건가요.
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려는 건가요.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께서 공포를 맛보고, 부서지고, 상처 입었는데도.
왜, 그 가해자가 아직 살아 있을 수 있는거죠?
왜, 벌도 받지 않고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는거죠?

용서받을 리 없어요.
용서해서는 안 돼요.
당신을 상처 입힌 상대가, 오늘도 어딘가에서 태연히 숨 쉬고 있다고요.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보복도 받지 않고.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돼요.

『....절대로,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억누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 나오는 살의를 억누르면서.

『.....실례하겠습니다.』

「자, 잠깐! 기다려.....! 부탁이니까.....!」

내 손으로, 확실하게, 철저하게. 후회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을 새겨 넣는다.

당신을 상처 입힌 그 손을, 이 세상에서 끊어낸다.

격정으로 마음을 채우고, 문손잡이에 손을 건 순간———

등 뒤에서,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발이 멈췄습니다.
머리가 급속히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뒤돌아보니, 그곳에 있는 것은.
눈물을 글썽이는, 저의 사랑스러운 분이었습니다.

『다, 당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당신의 모습에, 심장이 튀어 오릅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곁에 있는데.
누구보다 가까이서 당신을 지키고 있는데.

『어, 어찌 되신 겁니까!? 몸이....? 아니면, 어디 편찮으신 건가요!?』

초조한 나머지,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뺨을 닦습니다.
눈물방울이 피부를 타고 흘러, 제 손끝을 적셨습니다.

 

「와카모......」

당신은, 갈라진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눈동자에는, 아주 약간의 망설임이 떠올라 있습니다.
왜, 울고 계신가요.
왜, 저를 보고 그런 얼굴을 하시는 건가요.
이유를 알고 싶은데, 당신은 좀처럼 말을 꺼내려 하지 않으시는군요.

『네....! 저, 와카모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읏』

불안감에 휩싸여, 저도 모르게 당신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당신의 어깨가 작게 떨리면서 나오는,

「어디에도.... 가지 마......」

살며시,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는.
저의 마음을 꿰뚫기에는 너무나 충분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저의 역할은, 당신의 호위.
그것은, 언제 어떤 때라도 곁에 있는 것.
어떤 위협에서도 지켜내는 것.
당신께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검을 휘두르는 것.

.....그런데도.

 

복수를 위해.
격정을 위해.
제 자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저는, 당신을 혼자 두려 했습니다.

「부탁이니까.... 여기에 있어줘.....」

당신의 눈동자가, 저를 바라봅니다.
연약하게, 겁에 질린 채로.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읏』

가슴이 조여옵니다.
분노.
증오.
살의.
모든 것이 당신의 그 목소리에 삼켜져, 녹아내립니다.

『죄송합니다....』

호위란, 주인을 두고 떠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당신의 의지.

당신께서 「떨어지지 말라」고 하신다면, 저는 따라야 합니다.

『……부디, 부디 이 어리석은 저를, 당신 곁에 있게 해주세요.』

무릎을 꿇고, 조용히 머리를 숙입니다.
단순한 충성이 아닌.
단순한 계약이 아닌.

「와카모......」

당신의 떨리는 손이, 천천히 제 손을 잡습니다.
닿는 순간, 그 작은 손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추위 때문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 당신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거였어요.

 


——그렇다면.

그 역할은, 제가 맡아야만 하겠죠.

「응..... 고마워, 와카모......」

희미하게 흔들리던, 그 울림은.
저를 긍정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저의 분노보다, 당신의 공포가 더 강하다면.
복수보다, 저를 필요로 해주신다면.

어떤 쓰라림이라도, 삼켜버리리라.

살며시 얼굴을 들고, 당신을 바라봅니다.
자애롭게, 애타게.
무엇보다 존귀한 것을, 그저 조용히 바라봅니다.

『.........』

당신의 손을, 살며시 잡습니다.
떨림은, 아까보다 조금 더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깊게, 천천히 숨을 들이마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흔들림 없이 맹세했습니다.

 


『저, 코사카 와카모는——』

——병들었을 때도.

——건강하지 못할 때도.

——당신 곁에 서서.

——당신의 미소를 지킬 것을.

『여기 맹세하옵니다.』

 


말과 함께,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바람 소리마저, 멀리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맹세의 말을 품듯, 조용히 감싸 안습니다.

이윽고, 당신의 손가락이, 살며시 제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아주 약간의 힘인데도,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맡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도, 맹세하는 게 좋을까?」

당신은 눈물 자국을 손가락으로 닦으며, 큭 웃네요.
울어서 부은 눈이, 더욱 의지할 곳 없어 보였습니다.

『후훗♡ 부디 듣고 싶사옵니다만....』

말을 삼킵니다.
맹세의 말은, 마땅한 때에야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서두르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워요.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 때가 오면.... 분명히, 들려주세요♡』

당신은 조금 곤란한 듯한 얼굴을 했습니다.
그 표정마저, 저에게는 지극한 행복의 증명이었습니다.

이 분을 위해 살고.
이 분을 위해 싸우고.
이 분을 위해 죽는다.

당신의 행복을 목적지로 삼고, 그 여정에 동행하는 것을 허락받은저.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럼, 당신. 부디 영원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와카모, 의지하고 있을게.」

말뿐인, 구두 약속.
그것이 저 서류보다 더 존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결의를 다집니다.
비록, 이 몸이 얼마나 더럽혀지더라도.
비록, 이 손이 얼마나 피로 물들더라도.

 

당신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시리즈물인데 2편은 디씨에 번역되어있고, 나머지 하나는 최근에 나와서 없음

그래서 따로 볼라고 번역해뒀던 것

시리즈로 묶여있지만, 이거 하나만 번역하면 되서 단편 탭에 뒀습니다

 

[1] 카즈사에게 밀려 넘어진 선생님이 무서워서 우는 이야기

https://gall.dcinside.com/m/projectmx/12472687

 

[2-1] 여성공포증 선생님과 무거운 감정의 학생들 前

https://gall.dcinside.com/m/projectmx/12469896

 

[2-2] 여성공포증 선생님과 무거운 감정의 학생들 後

https://gall.dcinside.com/m/projectmx/12469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