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링크 : https://syosetu.org/novel/302033/1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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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샬레 활동 비망록
# 허무의 교의
선생님과 코하루가 합숙소로 돌아온 건 밤 9시가 되기 전쯤이었다. 둘이 돌아온 후 소녀들은 미뤄뒀던 저녁 식사를 넷이서 해결하고, 모두 함께 정리한 후 자유시간을 가졌다.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로비에 모여 있었다.
아즈사는 자신의 애총인 L119A1(Et Omnia Vanita)을 손질하고, 코하루는 스마트폰으로 모모톡 답장을 보내면서 열심히 교과서를 읽었다. 선생님은 자기 방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가지고 샬레의 업무와 씨름하고 있었고, 하나코는 그런 그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후아- 개운해요!」
방금 돌아온 히후미는 한발 먼저 목욕을 마친 모양이었다. 살짝 젖은 머리카락과 목에 걸린 수건, 교복 대신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에서 보디워시와 샴푸 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짝 코끝을 간질였다.
「일찍 씻었네, 히후미.」
「우후후. 왜냐면 히후미 쨩, 오늘 하루종일 씻지 못해서…….」
「아, 아우! 부끄러운 소리는 하지 마세요……. 오늘은 늦잠을 자버려서…….」
하나코의 그 말에 히후미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오늘 하루 내내 자기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혹시 선생님이나 모두에게 '좀 냄새 나네'라는 말을 듣기라도 한다면, 평범하게 죽고 싶어질 것 같았다. 꽃다운 여고생이자 한창때의 소녀인 히후미에게는 그런 일이 가장 중요했다. 내일부터는 절대로 늦잠 자지 않겠다고 히후미는 굳게 맹세했다.
「그건 우리를 위해서 늦게까지 시험 준비를 했기 때문이잖아. 면목이 없어. 히후미. 내일 아침에도 일어나는 게 힘들면 얘기해. 이번엔 히후미를 씻겨줄 테니까.」
「네? 네? 그, 그건 괜찮아요! 아즈사 쨩……!?」
「잠깐만, 나를 씻겨주는 건 확정 사항인 거야?! 혼자서 씻으라고! 어린애도 아니고!」
「효율을 추구할 뿐이야. 다 같이 씻으면 여러 가지 장점이 많으니까. 물도 절약할 수 있고.」
아즈사는 진지한 얼굴로 총을 손질하던 손을 멈췄다. 모두가 함께 씻는 것이 얼마나 이점이 많은지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효율은 간단해. 한 명씩 순서대로 씻으면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려. 하지만 넷이 함께 씻으면 단순 계산으로 4분의 1로 줄어들어. 안전은 말할 것도 없어. 인원이 많으면 습격에도 대처하기 쉽지. 게다가 물 절약도 되니까 이점이 많아.」
「어머…… 그러네요……. 저희는 대욕탕 같은 건 없으니까. 모두 다 함께 씻는다, 라는 이벤트는 좀처럼 없을 것 같지만…….」
여기까지 말한 하나코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대신 다음에 수영장에 다 함께 알몸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요? 대욕장 대신으로!」
「무슨 짓이야! 금지! 금지! 절대 금지!!!」
「상관은 없지만 거기에 의미가 있어? 수영장에서 몸을 씻는 건 금지잖아.」
「응? 해방감이 꽤 클 것 같지 않나요? 상상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은데…… 우후후♡」
「아아. 즐거움인가…… 그런 쪽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어. 음……. 해방감이라…….」
「아, 아니야! 하지 마! 생각해보지 마!! 멈춰, 생각을 멈춰!!」
하나코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아즈사는 또 하나 현명해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제안이었지만, 심리적인 이점이 명확해지자 거절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건 진지하게 생각해 봐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아즈사를 말리는 건 코하루의 몫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시키지 않겠다는 듯 파렴치한 상상에 제동을 걸었다.
「이상한 걸 물들이지 말란 말야! 트리니티에 변태는 너 하나로 충분하니까!!」
「어머? 코하루 쨩은 알몸으로 수영하는 파니까 잘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맥락 완전 무시?! 그런 파는 없다고!! 수영장에선 수영복이야! 그게 바로 정의라고! 그거 말고는 전부 처형이야! 사형이야!」
「흐응……. 그렇다면…….」
하나코는 그 지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깊은 미소를 지으며 코하루에게 시선을 향했다. 노려보는 건 아니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묘한 위압감을 느낀 코하루는 의자를 살짝 뒤로 뺐다.
「잘 기억해 보세요, 코하루쨩. 어제 수영장에서 제가 입고 있었던 비키니…….」
「으, 으응? 그건 왜……?」
코하루는 어제 하나코가 입었던 수영복을 떠올렸다. 핑크와 화이트 스트라이프, 비키니 타입의 귀여운 수영복. 딱히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어느새 이동해 온 하나코가 숨결 섞인 소리를 냈다.
「그건 정말로 수 영 복 이었을까요??」
「?! 수, 수영복이 아니면…… 그, 그, 그러면……?」
「요즘 언더웨어들은 디자인이 꽤 다양해서, 얼핏 보면 수영복으로 착각할만한 것도 꽤 많은 것 같고♡」
「……!?」
「뭐, 뭐였던 거야?! 그거?! 수영복이 아니면?! 서, 서, 설마…….」
방긋 웃는 얼굴에 숨겨진 놀림의 의도. 결정적인 말은 입에 담지 않고, 해석은 상대에게 맡기는. 당신의 상상은 어느 쪽입니까, 하고. 그런 말을 공상과 망상, 야한 잡지 수집이 취미인 코하루에게 해버린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그녀의 얼굴은 머리카락보다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야한 건 안 돼! 사형!'을 외치며 일어서려다가──── 바라보는 하나코의 시선에 기세를 꺾여버렸다.
「어머나. 어째서 동요하는 거죠? 그게 수영복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응, 코하루 쨩?」
「으, 으응?」
「애초에…… 수영복과 속옷의 차이는 뭐죠? 방수기능? 신체 보호? 디자인? 노출의 범위? 겉으로 봤을 때 아무런 차이를 알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그때 모두가 그걸 <수영복>이라고 믿었잖아요?」
「……??」
하나코는 그 순간, 지금 입고 있는 것이 최근 산 새 수영복이라고 말했다. 딱히 그것을 의심하지도 않았고, 사실인지 확인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더 이상의 추궁은 하지 않았다. 속옷도 보디페인팅도 때와 장소에 맞지 않고,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차림의 하나코가 입고 있던 것은 수영복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규칙이 정해져 있고, 그것이 상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사실은 그게 팬티였다고 말해도, 그 진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증명되지 못하는 진실만큼 무력한 건 없죠. 그렇지 않나요?」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뭐였다는 거야?!」
도중에 이야기가 철학적인 내용으로 변해서, 이론 전개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 코하루는 격노한 듯 노려보았다. 그러자 하나코는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우후후♡ 수영복, 이었어요. 미안해요, 놀리는 게 재미있어서 그만…….」
「……노, 놀리고 있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하나코에게 '또 놀림당했다'라고 순식간에 알아챈 코하루는 더욱 분노를 키웠고, 새빨개진 얼굴로 원망 섞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하나코를 흔들 수 없으니 결국 코하루의 혼자만의 씨름이었다. 그런 평소와 다름없는 두 사람 앞에서 히후미는 쓴웃음을 흘리고──── 혼자 진지한 모습으로 듣고 있던 아즈사는 어딘가 납득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음, 아니. 하나코가 얘기한 건 다섯 번째 화두 이야기야.」
「……?!」
누군가에게 들려줄 목적이 없는 작은 중얼거림. 하지만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그 말은 모두에게 전달되었고, 히후미와 코하루는 의문 부호를 띄우고────하나코는 평소의 여유로운 표정이 무너질 정도로 경악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섯 번째…… 네? 그게 뭐에요, 아즈사 쨩?」
「……」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야. 키보토스에 떠도는 일곱 개의 화두. 그중에 다섯 번째였던가.」
아즈사는 한번 선생님에게 시선을 주고는 곧바로 모두를 보았다.
「"낙원에 도착한 사람의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런 내용으로 기억해. 나도 그 나머지는 모르지만.」
「으음……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철학 같은 건가요……?」
「응, 그 해석이 맞아. 결론은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는 낙원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런 선문답 같은 이야기였어.」
「아즈사 쨩……. 그걸 어떻게…….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건…….」
거침없이 말하는 아즈사는 벼락치기로 얻은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가 무엇인지. 하나코는 '설마'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고는 아즈사를 보았다. 그 시선은 진지 그 자체였다. 모든 거짓을 꿰뚫어 보는 비취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아즈사 쨩……! 세이아 쨩을 만난 적이 있는 거예요?」
「……」
그 질문에 아즈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고,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말없이 하나코의 비취색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세이아?」
「세이아라면 티파티의 세이아 님……?」
「……」
히후미와 코하루는 낯선 이름을 되뇌이며,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냈다. 티파티의 세이아. 상투스 분파의 우두머리이자, 예지몽 속에서 흔들리는 소녀. 그녀는 이번 학기 티파티의 주최자였지만, 건강상의 불안으로 인해 나기사에게 대리 자리를 양보한 이후로는 거의 이름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당연히 히후미도 코하루도 만난 적이 없다. 이런저런 일에 발이 넓고, 감성도 한창때의 소녀 그대로인 미카, 가끔 다과회에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하는 나기사. 어느 정도 티파티 이외의 사람들과도 교류하는 두 사람과 달리, 세이아는 거의 외부와의 접촉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녀는 일반 학생들에게 트리니티에서 가장 먼 사람이었다.
「────아니, 그게 누군지 몰라. 이 이야기는 그냥 어디서 들었을 뿐.」
「……아, 아아……. 그렇죠. 아즈사 쨩은 전학왔다고 했으니……. 트리니티가 아닌 곳이라면…….」
아즈사는 막힘없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세이아와의 면식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정보만을. 그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할 생각도 없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코는 그 이상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아즈사의 프로필을 종합해 보면 보이는 것이 있었다.
「vanitas vanitatum……. 그 분교…….」
말하며 하나코는 사고를 굴렸다. 허무를 긍정하는 말을 교의로 삼는 분파…… 그것에 대해 딱 하나,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철저하게 탄압받고 박해받았던 그녀들. 그 집단이 도망쳐 어디론가 도착하여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자신의 정체에 육박하는 하나코를 뒤로 하고 아즈사는 선생님 쪽을 보았다.
「선생님은 나머지를 알고 있어?」
「글쎄, 어떨까? 하지만 전부 알고 있다고 해도 나는 알려주지 않을 거야. 지금의 너희에게 필요 없는 질문이니까. 지금 모두에게 물을 만한 질문은 하나코와 아즈사가 말한 다섯 번째 아니면 그 다음으로 두 번째 정도일 거야. 그 외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일곱 가지 옛 규율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에게 아즈사는 '역시나'라고 생각했고…… 하나코는 아즈사에게 품었던 것 이상의 경악을 느꼈다.
「질문 자체에도 의미는 있지만 중요한 건 생각하는 것이고, 계속 질문하는 거야.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야.」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노트북을 닫고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자, 내일도 일찍 시작할 테니 오늘은 이만 마칠까.」
「……그렇겠네요. 벌써 늦은 시간이고, 슬슬 잠들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히후미쨩 외에는 목욕도 아직이고요.」
「응,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오늘이라는 하루는 저물어갔다. 모두가 늘 하던 대로라고 생각하면서. 또 내일도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딘가에서 결정적인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
취침 시간을 한참 넘어서. 어제와 똑같이 히후미는 선생님 방으로 가서 허브티를 마시며 다음 날 이후의 준비와 회의를 하고 있었다. 대략적인 방침을 다 정리했으니 히후미를 방으로 돌려보내 재우려 했지만…… 그녀는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소중하게 안고 있던 토트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선생님.」
「……안색이 안 좋네. 무슨 일이야?」
「그, 하나코쨩 일인데요……」
「────그렇구나.」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녀라면 분명 알 거라고. 오늘은 조금 더 길어질 거라고 판단한 그는 히후미의 컵에 허브티를 다시 따라주었고, 그녀는 어딘가 후회나 죄책감이 스며든 목소리로 한마디씩 말하기 시작했다.
「……본의아니게 하나코 쨩의 성적을 훔쳐본 꼴이 되었지만…….」
히후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모모 프렌즈가 총출동한 클리어 파일이었다. 빛이 투과되어도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파일 속에는 꽤 두툼한 종이 뭉치가 세 묶음 정도로 나뉘어 끼워져 있었다.
「어째서인지 데이터베이스에 전부 모아 보관되어 있었어요. 특이한 일이라 보관되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뭔가 있었던 건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건네받은 종이 뭉치를 팔락팔락 넘겼다. 평범한 시험지부터 수재를 겨냥한 어려운 문제로 가득 찬 시험지까지 전부, 3학년분까지 망라한 답안지 뭉치. 그 용지 한 장 한 장의 오른쪽 위에는 세 자리 숫자가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작년 시험,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시험에 대한 답안지가 모여 있었어요. 어째서인지, 혼자서 그 모든 것을 풀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요……」
「그 아이가────」
「……네, 하나코쨩이었습니다.」
그 답안지의 모든 기명란에는 '우라와 하나코'가 새겨져 있었다. 필체는 그녀의 것이며, 이 답안은 틀림없이 그녀의 손으로 작성되었다고 강제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지금, 이렇게 괴롭고, 슬펐다.
그 속마음을 토로하듯이 히후미는 한마디씩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작년의 하나코 쨩은 1학년 때 3학년 수재반에서도 힘들어하는 심화 과정까지도 전부 다 만점을 받은 수재 중의 수재였어요…….」
「……그렇지. 학년 최고의 천재, 라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야. 틀림없이 트리니티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유례없는 정도일 거야. 새로운 파벌을 만들 수조차 있는 명실상부한 천재. 트리니티 대부분의 기록은 그녀에 의해 갈아치워졌겠지.」
이 결과를 보여주는 사실은 단 하나, '우라와 하나코는 천재이다', 그뿐이다. 그 지성은 트리니티에서 최고봉이며, 밀레니엄의 전지나 빅 시스터와도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보충수업부에 있다는 것은 즉.
「네…… 1학년 시험 결과를 보고, 하나코 쨩은 분명 '올해 들어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를 볼 때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의도적으로 점수를 낮춰서, 낙제를 계속하고 있다────히후미는 그렇게 생각한 거니?」
「……네.」
하나코는 모른다.
보충수업부가 설립된 목적도, 샬레와 선생님이 이곳에 있는 이유도, 합격하지 못하면 퇴학이 된다는 사실도, 나기사의 의도도.
그래서 한 자릿수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겠고, 정 안 되면 본실력을 발휘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히후미와 선생님뿐이다.
모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지 않은 두 사람의 과실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 자체가 배신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해주었는데. 싫은 내색 하나 없이 협력해 주었는데.
모두가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혼자만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들춰내는 이 답안지(현실)가 어쩔 수 없이 괴로웠다.
「하나코 쨩…… 어째서 이런…… 아우…….」
새어 나온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떨리고 있었다.
▼
별관 중앙 로비. 밤바람이 불어 차가운 곳, 하나코는 기둥 그림자에 숨어 서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조금 전 소리 없이 갈아입고, 총을 손에 든 채 방을 빠져나온 아즈사.
그녀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
「……」
날카로운 시선은 주변 경계를 드러내고 있었고,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잠시 기다리면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표정. 졸음을 느끼지 않는 듯 자신이 쥔 총의 감촉을 확인했다.
「……아즈사 쨩…… 또 불침번인가요?」
하나코는 몹시 걱정스러운, 혹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다섯 번째 옛 규율. 배경을 알 수 없는 전학생.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vanitas vanitatum'이라는 말.
하나코의 예측이 맞다면, 그녀의 정체는────
▼
히후미도 돌아가고, 선생님은 실내에서 혼자 다음 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충수업부의 준비는 아니었다. 다음 날은 혼자 트리니티에서 학생이 오는 것이다. 특별한 접대는 필요 없다고 받은 메일에 적혀 있었지만, 굳이 찾아와 주는 학생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만날 장소는 밖이므로, 음료수는 텀블러에 담으면 될까────하고 생각하던 중, 뇌리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선생님께 알려드리고 싶은 정보가 몇 가지 발견됐어요!」
「역시 아로나야, 예상보다 훨씬 빠르네.」
「으쓱! 그래도 슈퍼 아로나 쨩이니까요!」
그의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아로나는 태블릿 안에서 가슴을 펴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칭찬받았다면 졸린 눈을 비비며 정보를 찾아다닌 보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열심히 해준 소녀를 태블릿 너머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을까?」
「아, 그렇겠네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엿보거나 엿들으면 곤란하니까요……」
「알았어, 지금 갈게.」
그렇게 말하고, 그는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침대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
다음에 눈을 뜨니, 그곳은 푸른 교실. 밤으로 물든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이 무너져 가는 교실로 들어와 물웅덩이에 반사되었다. 발목 부근까지 차 있던 투명한 물은 빠져나가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조수의 밀물과 썰물 같은 현상이지만 가상 공간인 이곳에는 달이 없었다. 게다가 원래라면 별도 없고 밤도 없기 때문에, 이 반파된 교실 외의 모든 것은 아로나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옆모습은 그 아이와 똑같아서…… 그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굳어섰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발걸음을 옮기자…… 물웅덩이에 발을 들이밀고 말았다. 그러자 당연히 그녀도 눈치채고,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별이 흐릿해질 정도로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선생님!」
「여기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아로나.」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안겨서 얼굴을 묻고 있는 아로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의 건강 문제로 그녀가 직접 교실 출입을 금지시켰고, 그 금지 기간이 끝난 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바빴기에 기회가 없었다. 거의 한 달 만에 태블릿 화면 너머가 아닌 직접적인 만남이었다. 외롭게 만들었구나, 그는 내심 깊이 반성하며, 그보다 더 큰 사랑으로 그녀를 천천히 안아주었다. 그러자 원래부터 풀려 있던 그녀의 얼굴은 더욱 풀려서, 「에헤헤」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아, 그렇겠네요. 그걸 위해 선생님을 불렀던 거였죠……」
아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헛기침을 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학습 의자에 앉자, 아로나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알아낸 건 두 가지예요. 하나는 발키리 경찰학교 학생을 습격한 범인. 다른 하나는…… 가동된 성전에 대해서예요.」
「……정보의 확도는.」
「발키리 쪽을 습격한 범인은 대략 90%, 성전 쪽은 틀림없어요. 아로나 쨩의 눈으로 여러 번 확인했으니까요.」
「그럼, 먼저 발키리 학생을 습격한 범인부터 들어볼까?」
아로나는 책상 상판을 태블릿처럼 바꾸어 키보토스 전역의 지도를 표시했다. 빨갛게 표시된 곳이 학생이 습격당한 장소이고, 그것을 탭하면 피해자의 사진이 팝업되는 식이었다. 선생님은 몇 군데를 무작위로 탭하여, 다섯 장 정도의 사진을 띄웠다.
칸나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18건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더 늘어났다. 현재 누적 발생 건수는 21건. 그녀가 대책을 세운 이후로는 확실히 속도가 느려졌고,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정기적으로 칸나와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그들도 유효한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때, 2주 전에 일어난 습격 현장 검증에 참고인으로 불린 그는 오감과 센서로 포착한 모든 데이터를 아로나에게 보내고, 겸사겸사 지금까지의 기록도 그녀에게 넘겨 분석을 의뢰했는데…… 그 성과가 드디어 나온 듯했다.
「그래서, 범인은.」
「아마 게마트리아의 베아트리체라고 생각해요.」
신비의 잔재는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지만 셈 일신교라는 것만은 겨우 알아냈다. 그 후 아로나의 데이터베이스를 총동원하여 해당할 만한 것을 골라내고, 거기서 다시 압축. 그렇게 10개 정도로 수는 좁혀졌지만, 거기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생님이 이전에 들었던 조사의 진척이었다.
마지막 결정타는 피해자의 사진이었다. 목덜미의 압박 흔적. 선생님이나 칸나는 밧줄 등을 사용했다고 추측했지만, 진실은 달랐다. 베아트리체의 기관인 촉수에 의한 목 조르기. 습격당한 학생들은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목을 졸려 상처를 입었다.
그 상세를 모두 파악한 선생님은 떨리는 한숨을 내쉬고는────피부가 찢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주먹을 꽉 쥐었다.
「네놈은, 어디까지……!」
그 분노를 아프도록 아는 아로나는 눈을 내리깔고, 이어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범인은 알았지만, 목적은 결국 알 수 없었어요. 피도, 무엇으로 뽑아냈는지도……」
「베아트리체라면 목적은 좁힐 수 있어. 대개 신비의 수집일 거야. 피를 뽑아낸 건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그 이상의 이유는 없어. 발키리…… 북유럽 신화 체계의 신비를 원했겠지. 물론, 어떤 신비를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괜찮아. 베아트리체가 범인이라면 대책이 있어. 프로토콜 No.14576과 19088의 배포를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아로나는 그가 말한 번호의 프로토콜을 키보토스 전역에 배포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시간 벌기와 대책은 될 것이다. 싯딤의 상자로 짠 것이니, 적어도 한두 달 만에 돌파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이에 근원을 끊으면…… 그걸로 일이 끝난다.
「……자, 다음은 성전에 관한 거지.」
「네, 그쪽은 선생님의 고찰대로, 라고 할까요……」
「음ー…… 가능하면 맞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사실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아베스타의 위경은 선이 승리하지 못한 IF가 아닐까──── 아로나에게는 이전에 이야기했던 고찰이었지만, 아무래도 이것이 정답이었던 듯하다. 과정과 결론을 뒤집는 단순한 왜곡 방식. 하지만 단순하기에 틈이 없다. 뒤집혀서 위경으로 전락했다고는 하지만 성전은 성전. 그 출력은 신격에 필적한다. 결코 방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성 위경, 종말악의 레플리카. 만약, 아로나나 선생님이 생각하는 대로 알맹이가 깨어나면────」
아로나는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세계의 삼분의 일이 불탈지도 몰라요.」
▼
그렇게 밤은 끝나고────사흘째 아침이 찾아온다.
작은 끝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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