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카 소설 (Pixiv 이외)/[샬레 활동 비망록]

vol.2 태엽 감는 꽃의 파반느 【유어 네임 이즈】 — 누군가의 소원

무작 2025. 10. 5. 15:00

작품 링크 : https://syosetu.org/novel/302033/135.html

 

이전화 : https://qjsdur00.tistory.com/705


# 샬레 활동 비망록

# 누군가의 소원

너덜너덜해진 은빛 방. 탄피와 총탄, 헝겊 조각, 핏자국, 아비 에슈흐의 잔해. 방 안의 산소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고, 중력 가속도도 평지와 같은 1G. 변화되었던 환경은 깨끗하게 플랫한 상태였다.

방 중앙에는 팔다리를 쭉 뻗은 채로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네루가 있었다.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기도 확보가 된 편안한 자세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토키.

이겼다고는 하지만 여유롭게 이긴 것이 아니라 접전 끝에 이긴 승리였다.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기에 잠시 쉬고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쓰러져 있는 토키를 업고 밖으로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직후, 묵직한 문이 조용히 열렸다.

「……야, 선생.」
「……네루.」

문 너머에 서 있던 건 이 방의 통제실에서 여러 가지 조작을 하고 결말을 지켜본 선생이었다. 네루가 뚫어놓은 시원한 바람구멍에서 역광이 비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소중한 학생 두 명이 전력으로 서로를 죽이려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상냥한 그가 환영할 리가 없을 테고, 하물며 기뻐할 리도 만무했다.

「괜찮겠냐? 여기서 빈둥거려도. 목표는 아리스 구출이다. 나한테 신경 쓸 틈 따윈…….」


「그것이 네루를 두고 갈 이유가 될 수는 없어.」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실내로 발을 들여놓고 네루 바로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시선을 낮췄다. 그러자 네루의 눈에 그의 표정이 들어왔다.
예상했던 대로 끔찍한 얼굴. 울먹이는 건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그 자신이 상처를 입더라도 이렇게 괴로워하는 얼굴은 하지 않는다. 그의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것은 언제나 타인의 고통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학생이 다치는 것을 진심으로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런 그가 학생을 다치게 하는 짓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호흡에 필수적인 산소까지 빼앗았다. 그는 이것들을 분명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용서해도, 누가 인정해도, 그는 자신을 계속 책망할 것이다. 그것이 죽을 위기에 처한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자신의 죄라고 생각하며.

이기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네루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그는 쉽게 단념할 수 없다. 네루는 그의 고통에 대한 태도를 미덕…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짊어지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자칫하면 상처를 핥아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타인의 상처를 짊어질 뿐, 자신의 상처는 학생들에게 닿지 않는 곳에 밀어넣고 있다. 그런 건 너무 일방적이지 않은가.

그가 들여다본 푸른 두 눈동자는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얼굴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평소의 쾌활하고 종잡을 수 없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너덜너덜한 네루보다 더 고통을 곱씹고 있는 그에게 네루는 픽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런 침울한 얼굴 하지 마. 난 이겼잖아?」
「……그래도, 네가 다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나니까.」
「마지막에 납득하고 실행한 건 나다. 신경 쓰지 마, 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만… 난 선생이 그런 얼굴을 했으면 해서 싸운 게 아니야.」

네루는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섰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 전투가 끝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는 것은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어설 수 있는 것뿐. 그 이후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질, 하고 시야가 흐려졌다. 현기증이었다. 당연히 받아낼 체력 같은 건 없으니 바닥에 쓰러지면 머리를 강하게 부딪힐 것이다. 잃어버린 평형 감각,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지만… 그보다 빠르게, 네루의 몸을 감싼 그의 팔이 그녀를 붙잡았다.

「무리하지 마. 움직이는 것도 힘들 텐데?」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혼자 걷는 건 힘드네. 어깨 좀 빌려줄 수 있겠냐, 선생?」
「괜찮긴 한데, 나와 네루의 키 차이면 오히려 힘들지 않아?」

쓴웃음을 짓는 그는 성인 남성이었다. 그의 키는 몸집이 작은 네루와 비교하면 머리 두 개 이상 높았고, 어깨 위치도 그만큼 차이가 있었다. 그의 말대로 어깨를 빌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든 자세가 되는 것은 틀림없었다.

말없이 '작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에게 그런 의도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문제를 말했을 뿐… 그건 그거대로 짜증 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업어줘. 매달릴 정도의 힘은 있으니까. 선생이라면, 어차피 저 녀석도 옮길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네루는 토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를 옮기는 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겠지? 그럼 한 번에 옮기는 게 효율적이야.」
「……알았어.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줘.」

흐린 하늘을 꿰뚫는 듯한 미소를 띠운 그는 네루를 업고 잠든 토키를 옆으로 안고 방 출구로 향했다. 그는 으레 그러는 것처럼 방을 나서, 잔해 더미가 된 복도를 걸어 살아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 버튼을 눌렀다.

미약한 진동을 느끼며, 네루는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을 선생에게 물었다.


「저기, 선생. 선생이 보기에, 난 어땠어?」

「물론────최고로, 멋졌어.」

그 대답에 진심으로 만족한 네루는 덧니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루 선배! 괜찮아?!」
「괜찮을 리 없잖아, 언니… 이렇게 피투성이가 됐는데…」
「괜찮으니까 꽥꽥거리지 마, 머리 울린다.」

지상으로 내려온 세 사람을 맞이한 것은 게임개발부 세 명이었다. 그녀들 역시 내내 불안했을 것이다. 업혀 있는 네루의 모습을 보자마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고, 상처의 깊이를 알아차리자마자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던졌다.
바쁜 표정들이군, 하고 생각하며 네루는 맥없는 목소리로 소녀들의 걱정을 잘라냈다. 아까 전까지 산소 부족으로 머리에 산소와 피가 돌지 않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후유증 같은 것이 몸에 남아있었다. 큰 소리를 듣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물론 걱정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 않아서 그녀들에게 많이 약해졌지만. 아카네가 봤다면 '변하셨네요, 부장님'이라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애들은?」
「아스나, 카린, 아카네는 상처가 깊어서 아직 움직일 수 없으니까, 조금 떨어진 구역의 빌딩에서 쉬게 했어. 유우카, 노아, 코유키는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위해 움직여 주고 있어.」
「코유키라고… 그 녀석도 있어? 그 문제아가 말이야…」

뜻밖의 인물이 이 사건에 한몫 끼었다는 말을 듣고, 네루의 얼굴에는 확연히 놀란 기색이 번졌다. 설마 그 문제아라고 쓰고 망할 애새끼라고 읽는 세미나 제일의 트러블 메이커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네루가 아는 코유키는 간단히 말해, 말이 통하지 않고 윤리관이 결여된 폭탄마였다. 움직이다 못해 멋대로 불씨를 들고 와 불을 지르는 살아있는 재앙 겸 화약고가 바로 쿠로사키 코유키였다.

당연히 리오에 대한 반역에 참여할 인물도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의 보신을 위해 어느 세력에도 관여하지 않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꽤나 노력했던 모양이었다.


────그 녀석도 변한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어딘가 감회에 젖은 네루였지만, 이 사건이 종결된 한참 후에 코유키가 문제를 일으켜 그녀 자신의 손으로 금고처럼 생긴 반성실에 처박히는 일은 다른 이야기다.

「크래프트 챔버.」

그는 음성 입력으로 태블릿을 조작하여 허공에서 새하얀 담요 두 장을 꺼냈다. 담요를 받은 모모이 일행은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뒤 그것들을 바닥에 깔았다. 사람 한 명 정도는 여유롭게 누울 수 있는 넓이였다.
그는 「고맙다」며 소녀들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한쪽에는 네루를, 다른 한쪽에는 토키를 눕혔다. 여자아이들을 바닥에 앉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 점은 묘하게 신사적이었다.

「치료해 줄게. 움직이지 마.」
「……전부터 생각했는데, 그건 대체 어떤 마술이야?」
「기업 비밀이야. 알면 마지막엔 샬레에 평생 취직해야 하니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윙크까지 곁들였다.
어떤 제약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제쳐두더라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자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파격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이 샬레에 부여된 특권, 혹은 권한인가…라고 네루는 생각하며, 그의 등 뒤에서 「평생 취직…」이라고 중얼거리는 미도리는 못 본 척했다. 덧붙여 발언도 못 들은 척한다.

「뼈도 그렇지만, 내장 기관과 근육의 단열이 특히 심해. 게다가 척추도 다쳤어… 정말, 무리했구나.」
「뭐, 그렇지.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리를 하지 않았으면 내가 졌을 거야. 그 정도로 강했어, 그 녀석은.」

피를 씻어내고 깨끗해진 상처 부위에 정성스럽게 처치를 하고 거즈와 붕대를 감아 나간다. 물과 소독약이 스며들어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거렸지만,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은 네루는 어떻게든 억눌렀다.

「……꽤나 능숙하네, 선생.」
「나는 약하고 연약하니까. 다치는 일 따윈 일상다반사야. 게다가, 나는 싸울 수 없어. 모두의 뒤에서 지휘하는 것밖에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적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그의 의료 기술과 치료 솜씨는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전장의 최전선을 여러 번 경험해야만 이 정도로 능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C&C가 보유한 구호반에 필적, 혹은 능가할 정도로 그의 실력은 확실했다.

표면적인 상처 처치는 순식간에 끝났고, 남은 것은 내면적인 부분뿐이었다. 이것들은 전용 설비 등이 없는 지금은 어쩔 수 없으므로, 세포 활성제와 치유, 재생에 특화된 나노머신을 몸에 주입하고 경과를 지켜본다.


할 수 있는 일을 대충 마친 그는 태블릿을 다시 조작해 무언가를 불러냈다. 검은색 스커트와 같은 색상의 수트 재킷. 흰색 블라우스. 파란색 넥타이. 기계적인 디자인의 재킷. 밀레니엄 교복 한 벌이었다.

「더러운 채로는 싫겠지? 밀레니엄 교복, 두고 갈게. 마음껏 사용해도 괜찮으니까. 사이즈는 아카네한테 들었으니 아마 맞을 것 같은데… 혹시 틀렸다면 미안해.」
「정말 잘 챙겨주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니까.」

온화하게 미소 지은 그는 태블릿을 치우고,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응급 처치는 이걸로 끝이야. 어디 불편한 곳 있어? 붕대 조임이나, 사소한 거라도.」
「딱히 없는데.」
「그래, 다행이네.」
「……저기, C&C(우리)에 오지 않을래? 마침 우리랑 함께 나서는 타입의 지휘관이 필요했거든.」
「초대 고마워. 지금은 특정 학원에 편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좋은 대답은 못 해줄 것 같아. 하지만 샬레가 해체되고 길거리에 나앉으면 신세 좀 질지도 모르겠네?」
「어? 언질 잡았다, 선생?」

서로 미소를 주고받으며 미래를 약속했다. 네루는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순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늘처럼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날이 너무나도 기대되는 듯했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선생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선명한 통증을 호소했다.



────선생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 샬레가 그 역할을 마치고 해체될 것을.


그때 자신이 없을 것을.


그러므로 이 약속은 처음부터 어떻게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만들어진 풍경 속에 그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슬픈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이루지 못할 소중한 약속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그렇게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 직전에 학생과의 연결을 끊고 시스템을 껐는데… 다시 떠진 그의 두 눈동자, 그중 오른쪽 눈은 여전히 푸른색이었다. 왼쪽 눈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는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긴 속눈썹으로 둘러싸인 그의 눈동자는 모두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아로나의 교실 색깔이 아닌, 그 본연의 눈으로. 하지만 시스템을 끊었는데도 일시적이었다고는 하나 색깔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파악해두었어야 했다.


이 시점에서 그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모와 변환을 알았더라면, 뭔가 손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선생은 손에 응급처치 키트를 들고 일어섰다.

「더 악화되지 않도록, 사실은 침대 같은 데 묶어두고 싶은데… 그건 돌아간 후에 아카네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야, 선생, 설마 농담은 아니겠지?」
「흐흐, 글쎄?」

아까와 같은 장난기 어린 미소. 하지만 아까와 다른 점은 그 목소리와 표정에서 농담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까. 설마 진심으로 아카네에게 부탁할 생각은 아니겠지, 하고 네루의 등골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아카네라면 정말로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부탁이어서가 아니라, 그 행동이 네루를 위한 것이라면 그녀는 할 것이다.

「그럼, 나는 토키를 치료하고 올게. 바로 옆에 있을 테니, 무슨 일 있으면 불러 줘.」

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그에게 대답하듯이 네루도 퉁명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등을 돌린 타이밍에 그녀는 담요 위에 드러눕고.

「……흐읍, 후우────.」

폐 속의 공기를 쥐어짜듯이 숨을 내쉬었다.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 심호흡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면 폐가 아프고, 내쉬면 기도가 삐걱거린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꽤나 무리를 했군, 하고 어딘가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을 때 「네루 선배!」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게임개발부 소녀 세 명이 네루 곁에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감사와 죄책감, 그리고 미안함이 가득했다.
감사는 좋다. 하지만 죄책감과 미안함 같은 감정은 필요 없다. 그런 감정을 위해 네루는 싸운 것이 아니었다.

「감사 같은 거 필요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이다.」
「그, 그래도… 그 상처…」
「이런 건 침 좀 바르면 곧 낫는다. 튼튼한 게 장점이거든. 누구보다 빨리 복귀할 거야.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 나까지 기분이 나빠지잖아.」

동정받고 싶어서 싸운 것도 아니었다. 아파하길 바라서 싸운 것도 아니었다. 네루는 자신의 마음에 따르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했을 뿐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녀들을 돕게 되었을 뿐, 그러므로 마음 아파할 필요는 없다고 네루는 말한다.

「웃으면서 구하러 가는 게 너희들이야. 그럼 웃어. 웃으면서 아리스(꼬맹이)를 구하러 가. 그런 얼굴로 와 봐야 그 녀석만 곤란할 뿐이잖아. 아니면, 침울한 얼굴을 그 녀석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 그건…」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잖아? 자, 대답해 봐, 유즈(이마)!」

「……아리스 쨩이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우리도 웃는 얼굴로 있는 것…?」

「100점이다.」


네루는 손을 뻗어 유즈의 머리를 북슬북슬 쓰다듬었다. 그녀가 만족할 때쯤 유즈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지만, 딱히 신경 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선생이 할 일이 끝나면, 우린 내버려두고 중앙 타워로 가. 부상자들을 옮길 시간은 없겠지. 우린 괜찮아. 이제 와서 드론 따위한테 뒤처질 리 없어. 그런 잡병은 자면서도 부숴버릴 수 있다고.」

네루는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만」이라고 덧붙이고, 선생이 두고 간 MPX 두 자루와 많은 탄창을 보았다. 커스텀이 네루 취향은 아니었지만, 다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는 총기의 전문가다. 다루지 못하는 총은 거의 없었다.

손이 심심해진 네루는 총을 쥐었다. 손바닥의 무게를 느끼며 네루는 대충 만지작거리다가, '아, 잊은 게 있었군' 하고 생각했다.


「굳이 고맙다고 하고 싶으면, 꼬맹이를 반드시 구해라. 엔지니어부, 베리타스, 세미나, C&C. 우리가 사력을 다해 여기까지 바통을 이어줬다. 그걸 헛되이 하지 마. 지금까지의 모든 걸 날려버릴 통쾌한 피날레를 장식하고 와. 리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 기대하고 있겠다고?」

「……네! 네루 선배, 고맙습니다!」


내밀어진 네루의 주먹에 세 명은 가볍게 쥔 주먹을 톡 부딪히며, 그 가슴에 그녀의 의지를 짊어졌다.





마치 물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불분명하고, 눈에 들어오는 빛이 불분명했다.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잠들어 있는 것도, 자각몽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다시 잠에 들기 직전과 같은. 의식이 어느 쪽에도 있고, 어느 쪽에도 없는 상황.

그 상태에서, 토키는 의식의 각성을 선택했다. 일렁이는 수면 같은 소리가 선명해지고, 빛이 눈을 찔렀다. 희미하게 열린 시야 끝에 흰색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


「……여기는.」

「아, 정신 차렸어?」


목소리는 역시 예상대로,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시야의 초점이 맞춰지고, 흐릿했던 흰색 실루엣이 상을 맺었다. 완장과 코트. 그 생김새, 목소리. 착각할 리 없었다. 잘못 들을 리도 없었다. 이 사람은.


「선생님…」


중얼거린 토키는 그를 부르며… 의문이 생겼다. 왜 그는 자신의 곁에 있는 걸까. 애초에, 여기는 어디일까.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광경은, 그 방에서 네루와────거기까지 기억해낸 그녀는 「아아」 하고 한숨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미치지 못했군요.」


그 목소리에는 후회와 분함. 그리고 약간의 안도가 스며 있었다. 입가에 띤 미소는 자신을 정면으로 뛰어넘은 네루에 대한 찬사일까, 줄곧 맞서 싸운 선생에 대한 어이없음일까.


「……이것이, 패배입니까?」


곱씹은 씁쓸한 맛. 흙과 진흙, 피의 혼합물. 이렇게 거친 일에서 변명의 여지없이 진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온몸의 통증이 토키의 패배를 말해주고, 일절 타협 없이 그녀를 정성껏 치료하는 그가 패전 처리를 구현한다. 어떤 입장일지라도 다친 학생을 내버려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신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변함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정말, 많이 닮았다. 곧은 그와, 조금 비뚤어지고 알기 어려운 그녀. 둘 다 공통점은 타인을 자비롭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넘쳐흐르는 타인 사랑은 자신을 억누르고도 남을 만큼 큰 것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는 화낼 수 없다. 자신을 위해서는 미워할 수 없다. 두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눈물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울굴을 가리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가면을 쓰고 악역을 연기하는 그녀를 그가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부당한 세상에 짓밟히는 행복을 못 본 척할 수 없는 그녀처럼.


패배했는데도 마음이 이렇게나 개운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토키 자신도 이 결말에 납득하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다. 이걸로 괜찮았다. 이걸로 괜찮은 것이었다. 토키가 진다면 리오도 분명 단념할 것이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이상한 것이었다. 세상을 위해 아리스를 죽이는 것도, 그 집행자가 리오인 것도.
농담도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어째서 그녀들이 이런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목숨을 잃는 아리스가 행복한 세상에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세상을 위해 몸을 깎은 리오가 행복의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
노력과 헌신은 보답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이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면 더욱더.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토키의 사고를 읽은 듯이, 그는 나긋한 미소를 띠었다. 마치 '나머지는 맡겨 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그것을 본 토키는 '그라면 분명 괜찮을 거야'라고 안도했다.
거울처럼 닮은 그가 있다면, 그가 그녀에게 곁에 있어 준다면…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이론에 기반하지 않은 선의로 리오가 누군가를 구했던 것처럼, 그 역시 리오에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이제는 바라기만 하면 된다. 내밀어진 그의 손에, 그녀가 구원받기를.

「……처치는 끝났는데… 뭔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라도 있어?」
「아뇨, 딱히 없습니다. 정중한 처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이 정도는 전혀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씁쓸함을 품은 미소를 띠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도, 누군가가 상처 입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그는 당연히 토키의 상처에도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녀를 상처 입힌 것은 '아리스를 돕고 싶다'는 그의 의지였다. 동정은 용납되지 않는다. 연민은 용납되지 않는다. 물론, 후회도. 그녀와 대치한 시점에서 그 권리는 박탈되었다.

하다못해 이 자리의 고통은 모두 짊어지고 있지만… 결국은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누군가를 버린 자신의 죄 깊이는 지겹도록 이해하고 있었다. 학생 전원의 편이라는 그의 신념은 뒤에서 꿈틀거리는 추함을 감추는 핑계에 불과하다.


적어도, 지금의 자신이 가슴을 펴고 '학생 전원의 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토키를 상처 입히고, 리오를 상처 입힌 이런 자신이. 만약 오만하게도 그렇게 말한다면 '누가 뭘' 하고 매도당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허언증. 페이커. 사칭자.


────아아, 정말 쓰레기 같군.

그는 고개를 숙이고, 비웃었다. 언제나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구원할 마음이 없는 것도 자신이었다. 끝까지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자신이었다.

정의라는 마취제. 선의라는 바늘. 꿰매고, 속이고, 누더기투성이.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누구를 위한 선의인가.
아리스를 위한? 케이를 위한? 리오를 위한? 토키를 위한?
다른 곳을 향하는 그녀들의 정의는 교차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는 선의는 충돌을 낳는다.

그녀들 모두가 웃기를 바랐던 그는 어느 쪽을 향해야 하는가. 누구를 생각해야 하는가.
찾아 헤맨 질문의 정답은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밀어진 손만은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만은 놓치지 않도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모두처럼 하늘을 나는 재능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후회하면서, 헤매면서도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무력함을 곱씹으며, 기어 다니고 흙을 씹으며, 결코 씻어낼 수 없는 그만의 지옥을 안고… 현실에는 굴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틀린 채로라도 이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이상, 반드시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으며.


────토키는 그를 잘 모른다. 대화를 나눈 것은 손에 꼽을 정도. 처음 만난 날은 오늘로부터 한 달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와 한 일이라고는 거래와 전투뿐. 그러니 아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고 여기에 왔는지… 무엇을 바랐는지. 모르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생각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소문도 판단 재료 중 하나이지만, 가장 큰 것은 그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이다. 그를 바라보는 눈의 온도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저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하지만, 그는 외로워 보였다. 그의 옆얼굴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듯한 고독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적어도, 토키가 본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사랑받고 있는데도,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그는 사라지지 않는 고독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과 교사이기 때문에 벽을 쌓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와 그 외에는 어쩔 수 없을 정도의 간극이 놓여 있었다.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사랑을 알아차릴 수 있어도, 마주할 수 있어도, 결코 응답할 수는 없다.


……그런 그가 너무나도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노력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응?」

그는 그 표정을 확연히 경악으로 물들였다.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그런 얼굴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어딘가에 뿌리박은 그의 고독의 가시를 제거하듯이. 고독이야말로 자신을 이 세상에 묶어두는 쐐기라고 말하는 듯한 그에게, 또 하나 묶어둘 것을. 그의 얼굴에서 언젠가 고독이 사라지도록. 혹은, 고독마저도 사랑할 수 있도록.

토키는 기도한다. 그의 목을 졸랐던 두 손을 모으고. 그를 위해. 그와 같은 고독을 품은 그녀를 위해.

「……하하. 그렇구나… 그러게. 네루도 똑같은 말을 했어. 정말, 나는 글렀네. 학생에게 위로받다니.」
「그래도 괜찮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저희와 같은 인간이니까요.」


토키 일행과 같은… 그렇게 말해진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그는 순진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그의 표정. 마치 햇살 같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같았다.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분명 그의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토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보였다.

그렇다, 그와 토키 일행은 같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무언가에 분노하는 마음이 있고, 무언가에 슬퍼하는 마음이 있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 역시 인간이다.
완벽한 초인도, 성인군자도, 하물며 구세주도 아니다.

그는 모두(누군가)와 같은 속도로 걷는────인간이다.


그것이,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녀가 알게 된────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의 진실.



「같다, 라…」

중얼거리는 그는 지독히도 투명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어두운 밤이 지나 밝아온 푸른 하늘을. 설령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일지라도, 길의 도중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고 웅변하는 하늘은 그의 눈과 같은 색깔. 연방 학생회장의 색.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그는 「너는…」 하고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 대신 미소를 띠었다. 마치 추모의 꽃처럼.

그리고, 그는 소리 없이 일어섰다.


「자… 나는 이제 슬슬────.」

갈게, 라고 말을 끝내기 전에 토키 쪽에서 귀여운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에게도 옷을 주실 수 있을까요? 이 복장은 다소 쌀쌀하여…」

여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고는 하지만, 아침은 아직 쌀쌀하다. 토키가 입고 있는 바디슈트에 방한 방열 대책이 되어 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애초에 천 면적이 적기 때문에 설령 되어 있다고 해도 이 추위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교복 사이즈는 몇이야?」
「아마 M일 겁니다.」
「아마라니…」

메이드복 다음으로 평상복으로 입을 옷의 사이즈를 아마로밖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약간 놀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싯딤의 상자를 조작했다. 의류를 분류하고 밀레니엄 교복, M사이즈를 검색한다.

「네, 교복을 포함한 일용품은 모두 리오님이 마련해 주셨습니다.」
「메이드 주제에 주인한테 보살핌을 받았던 거냐, 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카로운 츳코미를 건 것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된 네루였다. 그녀는 이제 막 갈아입으러 가려던 참이었는지 게임개발부 소녀들에게 어깨를 빌려 도움을 받으며 서 있었다. 아마 장소를 옮길 생각인 것 같았다. 선생이 있는 이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은 아무래도 꺼려졌을 것이다.

딱히 그가 자리를 비켜도 상관없었지만… 토키 곁을 떠나려 하면 어째서인지 그녀에게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떠날 수가 없었다.
응석 부리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기쁘다. 노력가에, 외로움을 잘 타고, 그러면서도 감정 표현이 서툰 그녀가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그녀가 걱정 없이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감정을 삼키고, 미소를 지으며.

「교복은 있었는데… 어때? 혼자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무리입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즉답이네.」


그는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접촉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선생은 누워 있는 토키에게 교복을 입혔다. 옷 입히는 것 자체는 몇 번 해본 적이 있어서 순서에서 헤매지는 않지만, 그건 그거대로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게다가 손의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터라, 단추를 잠그거나 넥타이를 매는 동작은 물론, 치마 지퍼를 올리는 것조차 불안정했다.
감각이 없음에도 떨리는 손가락을 억누르고, 그녀의 몸에 가능한 한 닿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정성스럽게 교복을 입히는 것은 꽤나 고된 작업이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사안이잖아.」

100명에게 물으면 100명이 성희롱이라고 대답할 광경. 만약 칸나나 키리노, 후부키… 발키리 학생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순식간에 그의 양손에 수갑이 채워졌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아무리 봐도 사안. 현행범 체포는 틀림없었다.

「걱정은 무용합니다. 설령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변호해 드리겠습니다.」
「재판에 회부된 시점에서 이미 꽤나 끝난 거나 마찬가지인데?」
「면회는 찾아뵙겠습니다.」
「유죄가 되어 교도소에 처박힐 것을 전제로 하는 건가.」

형사 재판에서 유죄율이 99%를 넘기 때문에 재판에 회부된 시점에서 끝이 보이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키보토스의 사법 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지만, 발언권이나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코하루가 재판관이라면 분명 사형일 것이다.

지금까지 사정 청취 정도는 당해봤어도 체포당해 실형을 선고받은 적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대대손손 수치스러울 일이다. 물론, 어차피 자신이 마지막 세대일 테지만.

가정이나 가족 따윈… 지금보다 더 깊은 유대관계는 바라서는 안 된다. 바랄 자격도 없다. 어떻게 해도 떠나갈 테니까.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없다. 만들 수 있는 시간이라곤 길어봤자 1년 정도. 애초에 내일의 목숨조차 위태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과 선생의 거리감이 가장 편안하다.


언젠가, 그녀들이 선생을 잊어주기를.
그와의 추억을 더 큰 행복으로 덮어주기를.
그녀들에게 자신이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기를 바란다.

과거가 되기를 바란다.
설령 기억해 준다 하더라도, 그 기억이 아픔이 아닌 행복이기를.


선생은 마지막으로 토키의 넥타이를 맸다. 선명한 푸른색. 오늘의 하늘과 같은 색. 매는 것도 익숙했다. 샬레 교복에도 넥타이가 있고, 최근에는 아리스가 옷을 입혀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산만할지도 모르지만 기억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뇌에 잔류하는 잘려 나간 순간들이 시간순서와 상관없이 배치되어 있다. 떠올리고, 재구성하고, 시간이 지나면 뒤바뀌고.

넥타이를 바싹 조이고, 전체적인 균형을 보았다.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어때? 숨 막히거나, 상처가 아프거나 하는 건 없어?」
「딱히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정도는 전혀 아무것도 아니야. 감사 인사 같은 건…」
「그래도, 입니다. 저의 감사를 선생님은 받아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쓸쓸한 표정과 함께 듣자 그 역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감사는 솔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군가의 감사의 감정은 그대로 허공에 떠버릴 테니까.

「……아니, 감사히 받겠어.」

미소 지으며 그는 그렇게 말하고, 토키의 감사를 사랑스럽게 받아들였다. 그것으로 사소한 응어리도 눈처럼 녹아내려 그녀도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전투 시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선생님. 건방진 부탁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 좀 더 어깨 힘을 빼고. 나는 너의 선생이야. 기브 앤 테이크 관계가 아니야. 응석 부려도 괜찮아. 너의 소원도 의지도 마음도, 반드시 들어줄게. 네가 나에게 뭔가를 바란다면,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이뤄 보이겠어. 그러니 사양 같은 건 하지 마.」


그의 말에 결심이 선 듯, 토키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리오님을, 부탁드립니다.」

「아아, 맡겨줘.」



토키의 소중한 소원을 그는 분명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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