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카 소설 (Pixiv 이외)/[샬레 활동 비망록]

vol.2 태엽 감는 꽃의 파반느 【유어 네임 이즈】 — 그래도, 앞으로

무작 2025. 10. 1. 14:00

작품 링크 : https://syosetu.org/novel/302033/110.html

 

이전화 : https://qjsdur00.tistory.com/675


# 샬레 활동 비망록

# 그래도, 앞으로

바람이 분다. 기침을 해도 홀로. 이곳엔 선생 말고는 아무도 없다.

에리두 입구 앞. 높이 솟은 마천루가 차갑게 내려다보는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하얀 샬레 제복과 생기 없는 푸른빛의 핏기 없는 피부. 바람이 불면 꺼져버릴 듯한 생명의 등불이라도 타오르고만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꺼지지 않았다면 그걸로 족하다.


「────」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AMAS들이 성대하게 그를 맞이해 줄 것이다. 리오가 손수 제작한 초고성능 드론이다.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가령 적과 마주친 것이 한 대뿐이라도 총을 가지지 않은 선생이라면 확실히 패배를 맛볼 것이다. 아니, 설령 무기 종류를 가지고 있다 해도 질 것이다.
즉, 아리스가 갇힌 중앙 타워까지 가는 길에 한 번이라도 리오의 탐지망에 걸리는 순간 그의 패배는 결정된다.
믿었던 아로나도 현재는 휴면 중. 깨어나는 것은 대략 두 시간 뒤일까. 싯딤의 상자도 그의 생명 유지에 모든 자원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반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많은 기능은 사용 불가다.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다면 생명 유지 기능을 꺼야만 한다. 지금, 싯딤의 상자로 할 수 있는 것은 크래프트 챔버의 물품 호출 정도다.
학생과의 접속은 여전히 사용 가능하지만, 몇 시간이고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적절히 쿨타임을 두지 않으면 뇌가 타버려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일단 수색이나 해킹에 사용할 태블릿은 하나 가져왔지만, 고작 시판 최상위 모델일 뿐. 싯딤의 상자와 비교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상당히 약화되었다. 애초에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한계이며 손발의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시야도 흐릿하고, 의식조차 안개 낀 것처럼 불분명하다. 가끔 부정맥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도 상당히 힘들다. 신경이 이상한 건지, 감각도 둔했다. 이런 식으로는 통각이라는 브레이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폭주 기관차다. 이대로 한 발 내딛으면 그는 멈출 수 없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이 앞에 기다리는 것은 파멸이다. 설령 모든 것이 잘 풀려 살아 돌아왔다 해도 망가진 부분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원래 움직이지 않을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거야. 후유증 한두 가지쯤은 각오했어. 죽는 것도 마찬가지고.」

누구에게 들려줄 것도 없이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미 준비는 마쳤다. 자신이 죽은 뒤에 작동할 프로토콜. 와카모에게 전한 크래프트 챔버 제한 해제 코드, 총학생회에 양도할 샬레의 권한. 앞으로 닥쳐올 파멸에 대한 대처를 포함해, 그가 아는 모든 것.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보험이다. 죽을 각오는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죽을 생각은 전혀 없다. 설령 절망이 필연적이라 해도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기로 결심했다. 이 역할을, 이 짐을 다른 누구에게도……하물며 학생들에게 지게 할 수는 없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날카로운 시선으로 앞을 꿰뚫었다.
그리고 에리두에 발을 내디디려던 ──── 그 순간.



「기다려 주세요, 선생님.」

풍경 소리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귀에 익숙한, 사랑스러운 목소리. 선생은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뒤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날처럼 그녀의 이름을 소중히 발음했다.



「……노아.」


노아는 그를 바라본다. 오싹할 정도로 푸르고 하얀 피부. 한눈에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매,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가요?」
「에리두 중앙 타워…… 아리스에게로.」
「그곳에는 게임개발부와 엔지니어부, C&C 분들이 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분명 아리스 님을 구해 줄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은 병원으로 돌아가시죠?」

병원으로 돌아가서 상처를 치유하고. 아리스를 데려온 모두를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 확실히, 그게 합리적일 것이다. 죽은 목숨과 다름없는 그가 지금 와서 에리두로 향한다고 한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해야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향하지 않고 포기하고, 침대 위에서 얌전히 누군가의 귀환을 기다리는 것. 그녀들의 성공을 빌면서.


하지만, 그건 ──── 울고 있는 아리스를 저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체념을 품은 케이를 저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짊어지려 했던 리오를 저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선택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고마워, 노아는 상냥하구나. 하지만……나는 가야 해.」
「……당신이 선생님이니까, 인가요?」

그 말은 노아에게 저주와도 같았다.

선생이니까, 어른이니까.
그 말 한마디로 그는 몇 번이나 상처받는 것을 택했다.
자기 이외의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여전히 노아는 날카롭구나. 맞아. 나는 선생님이니까 학생들의 위기에는 달려가야 해…… '이것'만이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이거든.」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 ──── 그것이 선생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노아는 알고 있었다.
아득한 과거, 노아는 리오와 히마리의 추측 형태이긴 했지만, 선생에 대한 고찰을 들은 적이 있다.


말하자면, 키보토스의 진실에 도달했기에 인간이 아니게 된 무언가.


그는 운명의 날을 기점으로 인류가 품는 당연한 거리감과 안심을 잃어버렸다. 원래부터 이방의 생명체였던 그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키보토스와 그의 골은 더욱 절망적으로 깊어졌다. 마치 현실 세계에 뻥 뚫린 허무의 구멍…… 존재해서는 안 될 '침략 생명'의 유물. 그것이 인간이 아니게 된 그에게 주어진 평가다.

이후, 누구와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된 그였지만, 그는 그럼에도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었다. 설령 이방이라 해도, 가짜라 해도, 허무라 해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기를 그는 빌었다.


그 근본에는 '나는 그녀들의 선생님이다'라는 그의 원초적인 맹세가 있었다. 이 맹세만이 그를 인류라고 정의하는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의미를 노아는 알고 있었다. 이것을 부정하면 마지막에는 그는 말 그대로 허무가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래도, 선생님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이건 제 이기심일까요?」
「……곤란하네.」


정말 진심으로 곤란해하는 듯한, 하지만 상냥함이 배어 나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노아는 그의 품에 안겼다. 등 뒤로 감기는 두 손. 옷 너머로 전해지는 그 온도와, 사라질 듯한 생명의 고동.


「이렇게 차가운 손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에요. 당신을 보내 버리면, 당신은 죽어 버려요.」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 설령 죽는다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나는 선생이 아니게 되어버려. 모두와의 연결을 잃어버리게 돼.」


자신이 선생이 아니게 되고, 학생들과의 연결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두려운 지옥이었다.
자신이 상처받는 것은 괜찮다. 죽는 것도 괜찮다. 학생들에게 잊혀도, 미움받아도, 싫어해도, 살해당해도, 그 끝이 밝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과의 연결을 잃어버리는 것만큼은 싫다. 그런 비참한 결말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나아가겠다는 건가요? 선생님을 걱정하는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리고. 상처 입는 것 자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강하게 쥐어져 구겨진 샬레 제복. 떨리는 노아의 손과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선생을 이 자리에 붙잡는다. 그녀의 등을 쓸어주려던 손은 갈 곳을 잃었다. 그녀의 기도와 말에서 눈을 돌리려 했던 자신에게, 그녀를 만질 자격 따윈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든 납득시키려고 했던 안일한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이것은 누군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몇 번이고 무의미한 시체 더미를 쌓아 올렸던 자신에 대한 벌인 것이다. 눈을 돌리는 것도, 귀를 막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한마디 한마디 모두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그 위에서? 무엇을 지껄일 셈인가. 무엇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자신의 몸을 걱정하며 울고 있는 노아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한단 말인가.

학생(아리스)을 위한다고 하면서 학생(노아)의 소원을 짓밟았다. 이 몸은 또다시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생각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렇게나 고귀한가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신에게 가치가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건 틀려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좌절해도, 실패해도, 당신은 늘 소중히 여겨지고 있어요. 당신을 늘 소중히 생각하고 있어요.」
「노아……」
「당신이 선생님이라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이 당신이라서, 당신이 당신이라서…… 이렇게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거예요.」


학생들은 선생이라는 직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이 그였기 때문에, 선함과 상냥함으로 가득 찬 그였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다.
학생들을 지켜보는 상냥한 표정, 때때로 보이는 해맑은 웃음. 샬레의 문을 두드렸을 때, 맞아주는 표정. 머리를 쓰다듬는 손과 안아주는 손. 그것들은 모두 그가 그였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그이기에 학생들은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총을 맡기는 것이라고──── 노아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선생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노아는 선생이 언제까지나 '선생'이기를 바란다. 늘 곁에서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늘 함께 걸어가고 싶다. 그와 함께 눈부신 나날을 달려 유년기를 마치고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생이라는 칭호가 저주가 되어 버린다면. 자멸하면서까지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나약한 소리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멀리 가 버린다면.


그렇다면 ──── 그 무거운 짐을, 지금만큼은 내려놓아도 좋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울어도 좋지 않을까.

그 역시 한 명의 인간이다. 앞을 보지 않고 걷지 않고 멈춰 서 있을 때도 괜찮다. 바래지 않는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려도 좋다. 그런 사소한 약함을 용서하지 않을 학생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슬픔. 남겨진 자신과 만족스럽지 못한 매일. 몇 번이고 무력함을 저주하고, 소리 높여 울고. 그렇게 움켜쥔 나유타 끝의 기적.


그러니 가지 마세요, 사랑스러운 이여. 더 이상 어디로든.

매달리듯 올려다본 그의 두 눈에는 확실히 망설임이 있었다. 갈등이 있었다.
몇 번이고 자신을 죽이는 듯한 씁쓸한 표정은 그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 그는 지금, 진심으로 노아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진심으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마주하고. 결심한 듯 눈을 떴다. 거기에는 한 가닥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노아, 고마워. 아마도 나는 누군가에게 계속 그렇게 말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아.」

아까 전까지 갈 곳을 잃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두 손은 노아의 등 뒤로 감겨 그녀를 약하게, 하지만 확실히 안아주고 있었다. 그 몸짓마저도 노아를 휘젓는다. 이 상냥함도 안아주는 방식도, 모든 것이 자신이 기억하는 그대로였으니까.

「그렇다면……!」



「──────하지만.

그는 평소처럼 웃으며 노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아직 포기할 수는 없어. 나는 아직 발걸음을 멈출 만한 이유도, 미래도 찾지 못했거든.」



────총학생회장. 너와 했던 약속은 계속 기억하고 있어. 윤회의 절벽에서 맺은 계약. 멀리 향하는 마지막 열차에서 맡겨진 소원. 하늘의 틈새, 별이 떨어지는 하늘 아래에서 나눴던 꿈 이야기. 그걸 생각하면 발걸음을 멈추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면목이 없다거나, 학생들을 위해서라거나…… 그런 이유도 물론 있지만, 아직 내가 납득하지 못했거든. '이걸로 끝내도 좋다'고 생각할 만한 엔딩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미안해.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 볼게.」

────그 끝에서, 당당히 내세울 답을 찾기 위해.


「……기어이 가실 건가요?」
「갈 거야. 아리스에게로.」


그 망설임 없는 곧은 목소리를 듣고. 노아는 내밀어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알겠습니다」라고 중얼거리고…… 'MP-17(서기의 결단)'을 뽑아 들었다.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선생님 혼자서는 걱정되니까요.」
「……미안해, 휘말리게 해서.」
「신경 쓰지 마세요. 이건 원래 밀레니엄의 문제니까요.」

그녀는 「게다가」라고 덧붙여.



「다시는 선생님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노아, 너는────」

무언가를 물으려던 그의 입에서 말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


「모두와 함께 아리스 쨩을 데려오고, 우리 다 같이 유우카 쨩에게 혼나도록 해요.」
「……그러자. 그럼 혼나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야겠네.」


선생은 시스템을 기동시킨다. 태블릿도 작동시켜 전투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노아는 불쑥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모든 게 끝나고, 유우카 쨩에게 혼나는 것도 끝나면…… 잠시 시간 좀 내어 주실 수 있나요? 묻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물론. 실은 나도 너에게 묻고 싶은 것과 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

「후후, 기막힌 우연이네요. 그럼, 끝난 후 기대하고 있겠어요.」



두 사람은 에리두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의 여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를 따르기로 결심한 노아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지키게 해 주세요.」



노아는 가슴을 펴고 그와 함께 걷기로 결심했다.


노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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