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카 소설 (Pixiv 이외)/[샬레 활동 비망록]

vol.1 아비도스 대책위원회 【별에 손을 뻗은 날】 — 닿지 못한 별

무작 2025. 9. 22. 17:00

작품 링크 : https://syosetu.org/novel/302033/67.html

 

이전화 : https://qjsdur00.tistory.com/621


# 샬레 활동 비망록

# 닿지 못한 별

아득하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떠오른다.

「쨔안-! 봐봐- 호시노 쨩-!」
「……그 종잇조각은 뭐예요?」

호시노의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 한 조각의 친근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예리함.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강박관념과 초조함, 불안, 그리고 어디로도 향할 수 없는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 찬──호루스의 눈.
전투에 방해되지 않도록 짧게 자른 복숭아색 머리카락, 밀리터리 재킷. 그것은 새벽의 호루스라 불리던 그녀의 전성기 모습이었다.

키보토스 최강 클래스인 그녀에게 정면으로 노려보인 소녀는 『잘도 물어봤구나!』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간신히 구한 옛날 아비도스 사막 축제 포스터야!」


호시노는 한없이 태평한 소녀에게 짜증을 느끼며, 문제의 종잇조각을 보자 확실히 포스터였다. 세월의 흔적으로 색이 바래고 약간 더러워졌지만, 축제를 알리는 활기찬 색채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날짜는 한참 전의 것이었다. 이 포스터만, 지금 눈앞의 소녀만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다. 옛날의 번영을 보고 있다. 지금의 쇠퇴를 보지 못한다. 미래의 멸망을──알지 못한다.

「그때는 오아시스가 호수처럼 넓었대. 어떤 느낌이었을까? 분명 예뻤을 거야…… 아,  이거, 기념으로 줄게!」


소녀가 내민 종잇조각을 호시노는 진심으로 귀찮고 성가시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그녀에게는…… 아니, 눈앞에 있는 머릿속이 꽃밭인 소녀 외에는 이 포스터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이 있어도 지금은 구원받지 못한다. 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땅이 이어져 있지만, 지나간 시간은 현재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이 포스터가 있어도 옛날처럼 축제가 열릴 리 없고, 애초에 그런 헛된 짓을 할 여유도 시간도 없을 것이다.

「에헤헤…… 엄청 멋지지? 만약 기적이 일어나준다면 다시 여기에 사람들이 잔뜩 찾아와줘서 짜안- 하고…….」


「기적 같은 건 없습니다. 선배님. 그런 속편한 것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꿈 따윈 꿀 필요 없다.
꿈을 꾼다 해도, 눈을 뜨면 가혹한 현실이 비웃고 있겠지.
잠시 구원받았다가, 결국 얼마 뒤에 더 큰 절망으로 되돌아온다면 그런 순간적인 안식은 필요 없어. 거기에 매달려 떨어질 바에는, 내 심장에 총구를 겨누는 편이 희망적이야.

결국, 꿈과 현실, 그 간극에 괴로울 뿐. 그럴 바엔 처음부터 꿈 따윈 꾸지 않는 편이 낫다. 구원받지 못하는 현실에 안도하는 편이 좋다.

「사막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왜 찾아옵니까!! 꿈같은 소리는 그만 하세요!!」
「우웅…… 그치만 호시노 쨩. 미, 미안해……. 내, 내가 바보라서…….」
「……읏!」

소녀의 얼굴, 미안함과 어설픈 비굴한 미소가 뒤섞인 표정을 보고, 호시노의 분노가 임계점을 맞이한다.
내밀어진 종잇조각을 반쯤 낚아채듯이 빼앗자, 소녀는 놀란 얼굴을 하고.


「……기적이니, 행운이니, 다행이니…….」

호시노는 이제 자신의 의지로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운이 나빴을 뿐, 천재지변에 대한 명확한 책임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화를 내고 울어도, 이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아아, 그런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누구에게도 향할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을 자기 안에 가두어 둘 수는 없었다.


「당신이 아비도스의 학생회장입니다! 조금 더 그 어깨에 놓인 책임의 무게를 자각하셔야죠!!」


그렇게 내뱉고, 호시노는 소녀에게서 빼앗은 지나간 날의 추억을 찢어 버렸다.





처음 봤을 때는 ‘신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요란하게 나타난 샬레의 선생,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그 소문은 아주 자주 들려온다. 키보토스의 소란스러움에서 거리를 두는 아비도스에서도 이 정도다. 샬레의 거점이 있는 시라토리는, 그것 참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키보토스 외부의 성인 남자. 그렇다고 해도 헤일로의 유무나 신체 능력 외에는 큰 차이가 없고, 키보토스에 사는 주민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나이도 학생들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아, 확실히 선생이라는 직책에 적합해 보인다. 학생들을 어른으로 이끄는 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바라고, 그 발전을 돕는 존재. 가르치고, 이끌고, 함께 웃고, 함께 걸어가는 누군가.

부임 첫날부터 사건에 휘말려, 그 놀라운 수완으로 해결을 이끌어냈던 그의 모습은 뉴스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 그리고 연방수사부 샬레의 역할도. 왈, 키보토스의 만능 해결사. 부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나쁘게 말하면 남의 사정 때문에 헛고생하는 일. 학생을 포함한 키보토스 주민들이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달려가는 안전장치 같은, 그럴듯한 소원 기계 같은, 혹은 무책임하게 빌어지는 유성처럼, 확실히 키보토스의 수요와 맞아떨어진다. 총격이 끊이지 않는 번잡한 곳이니, 그런 균형자적인 역할은 필수일 것이다. 특히, 총학생회가 기능 부전에 빠진 지금은 더욱.

물론, 그 전후 관계가 궁금하다. 총학생회장이 실종되어서 선생이 나타난 것인가, 선생이 나타나서 총학생회장이 실종된 것인가. 이 인과는 매우 중요하다. 결과가 같아도 과정이 다르면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한 번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총학생회장과 만난 적이 있냐고. 그러자 그는.


────실은, 만난 적 없어. 신기하지.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만난 적도 없는 인간에게 샬레라는 초법규적 조직을 맡기는 총학생회장의 머리는 괜찮은 건가, 라거나, 모르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선생에게도 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가벼운 농담은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의 표정. 결코 손에 닿을 수 없는 별을 그리워하는 듯한 얼굴. 돌아오지 않는 동경을 애도하는 얼굴. 끝없는 향수에 몸을 태우는 얼굴.


하지만, 그것보다 강했던 것은 '만나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한 순간만이라도 좋으니. 설령 만날 수 없더라도 소식만이라도. 아니, 그조차 필요 없어. 살아있으면 그걸로 됐어. 웃고 있어도, 울고 있어도. 어떤 모습이든,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 어딘가의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내쉬고 있으면 그걸로 됐어. 네가 사랑했던 장소는 내가 잘 지킬 테니, 언제든 돌아와도 좋아──── 사랑이라 부르기엔 왜곡되어 있고. 연정이라 부르기엔 무겁고.

하지만, 그럼에도 순수한 감정이었다. 순도가 너무 높아 광기마저 느껴진다. 좋게 말하면 평등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심한 감정을 학생들에게 향하는 그. 모두가 특별하기 때문에,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평등하게, 무심하게, 차별 없이 대한다. 모두를 사랑하는 대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특별함…… 그것이 총학생회장인 것이다.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서 총학생회장은 학생이 아니다. 좀 더 다른…… 복잡한 관계. 그걸, 조금 부러워하고 말았다. 바꿀 수 있다면 바꿔보고 싶다. 선생의 특별함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꿈같은 이야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그를 배신할 것이기 때문에.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동료를, 모든 과거를 지금부터 배신할 것이다.



「미안해……」


어쩔 수 없잖아. 그런 터무니없는 금액을 덤터기 써도 갚을 길 따윈 없어. 아무것도 못 한 채, 사랑했던 아비도스가 카이저의 것이 되는 광경을 입술을 깨물며 지켜볼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것을 뒤엎을 한 수를 호시노는 가지고 있었다. 카이저가 아닌 자와의 거래. 게마트리아라고 불리는 이형의 신비 탐구 집단은 키보토스 최강 클래스의 신비를 가진 호시노를 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래에 응할 생각은 없었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이제는 ‘이런 내 몸으로 만족한다면 기꺼이’라고 꽤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당해낼 수 없는 현실에 무너져 내리는 아비도스를.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 너무나도 충분할 정도로 노력했다. 소중한 고등학생 시절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썼고, 자그마한 행복을 음미하던 그녀들에게서 또다시 빼앗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벌집으로 만들어 버려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게다가, 선생도. 더는 그를 마주할 면목이 없다.


특권 계급에 발을 들여놓은 신의 대리자를 보길 바란다, 라고 검은 양복이 말했다.
숭고한 대리자로 보였는가, 라고 카이저 이사장이 말했다.
그리고, 호시노가 검은 양복과 회담하고 있을 때 아비도스와 흥신소, 선도부가 대치한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존재.

여기까지 힌트가 나왔으니 알 수밖에 없다. 모든 사정,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해해버렸다. 눈치 없다고 질려버릴 만큼 잔인하게 보여서 싫어질 것 같다.

아비도스의 동료들이 싸워 격퇴한 신의 지식(자프키엘)이라 불리는 무언가. 그것이 검은 양복이 준비하여 호시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신의 대리자라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검은 양복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호시노는 신의 대리자와 싸우기는커녕, 눈으로 보는 것조차 없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 본래라면 호시노와 대치했어야 할 대리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명확하지만 선생을 표적으로 삼아…… 그리고, 그 상처를 입혔다.

더 이상 발뺌할 수 없어. 내가 그를 다치게 한 것과 마찬가지다. 비록 간접적일지라도 상관없다. 그녀가 상대했어야 할 적을 그에게 떠넘겼고, 그 끝에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할 수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최악의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 호시노의 마음속 부드러운 부분이 꺾였다. 오랫동안 질질 끌어왔던 이별과 함께, 호시노의 마음은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영역으로 가 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이곳에 있다.

피부를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은 단두대에 휘몰아치는 칼날. 마천루를 올려다보며, 아무도 오지 않는 현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호시노는 죽음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디 뎠다.

시로코, 노노미, 세리카, 아야네…… 소중한 후배들. 게으름뱅이인 나를 잘 따라와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뿐더러, 가슴을 펴고 자랑할 수 있는 동료들이다. 그녀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어리석게도 시간만 축낸 내 몸에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메 선배…… 미안해. 내가 죽어도, 그쪽으로는 못 가겠네」

돌아갈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소중한 선배. 그녀의 의지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호시노가 이어받아, 아비도스 대책위원회의 네 명에게 계승했다. 그녀는 분명,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키고 싶었던 아비도스는 누군가가 계속 지켜줄 것이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양지에서 웃는 그를 중얼거린다. 여러모로 폐를 끼쳐버렸다.


그를 믿지 않았고, 이기적인 동족 혐오에 사로잡혔다. 소중한 동료들에게 무슨 불미스러운 일을 하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쏴 죽일 작정이었다. 여러모로 눈치가 빠르고, 규격 외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이니, 분명 그 속셈도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대해주었다. 특별 대우하지 않고,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죽고 싶지 않아서'와 같은 자기 방어가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누군가를 위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그를 애도했다. 상처투성이로, 피를 토하면서도,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찾아버린 나머지, 당연한 기능인 '정지'를 잃어버린 그를 가련하게 여겼다.

학생들이 소중하다고, 호시노가 소중하다고 외친 그에게…… 무엇을 느꼈던가. 그것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의 상처가 내 것인 양 아팠다. 그의 웃는 얼굴에 기뻐했다. 그의 슬픔에 슬퍼했다. 그의 분노에 떨었다. 그와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느꼈다. 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눈으로 좇았다. 고독을 걷는 그의 곁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름 없는, 내 뱃속에서 태어난 마음.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는 것에 사과한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 간접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를 다치게 한 거잖아. 그런 학생이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을 수는 없어. 아무 말 없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이 결말에 도달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한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잃고, 소모해 온 이 몸. 늘 보호만 받고, 늘 흘려버리기만 했다. 그런 발걸음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서, 이 호흡을 멈출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타카나시 호시노에게 주어진 최대의 성과다.


물론, 생각하는 바는 있다.
후회도 미련도 있지만…… 분명 괜찮을 거야.
뭐니 뭐니 해도, 지금 아비도스에는 선생님이 계시잖아.
길을 벗어나도 그라면 바로잡아 주겠지.
부탁만 해서 미안하지만, 귀여운 학생의 마지막 부탁이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줬으면 해.



「……」

호시노는 마지막으로 아비도스를 눈에 새기고 나서, 자신의 길에 마침표를 찍을 관이 될 빌딩에 발을 들인다.


────더는 돌아갈 수 없어.



작가의 말 : 다음부터 아비도스 최종편입니다.


1장 종료까지 앞으로...

 

 

다음화 : https://qjsdur00.tistory.com/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