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카 소설 (Pixiv 이외)/[샬레 활동 비망록]

vol3. 에덴 조약 보충수업부 편 【하늘에서 영락하는 구세주】 — 첫 번째 낙양, 낙원의 증명

무작 2025. 10. 12. 13:00

작품 링크 : https://syosetu.org/novel/302033/162.html

 

이전화 : https://qjsdur00.tistory.com/749


# 샬레 활동 비망록

# 첫 번째 낙양, 낙원의 증명


「……말하자면, 에덴조약은 <그만 미워하자> 라는 약속.」

음유시인이 비파를 연주하듯, 소녀는 말을 소리로 낸다. 거기에 있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자, 소녀의 존재 그 자체.

바람이 분다.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찻잔에 담긴 홍차 수면이 흔들린다.

트리니티 종합학원, 가장 깊숙한 곳. 트리니티 내에서도 한정된 학생들…… 티파티 세 명과, 그 보좌관밖에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 이곳이었다. 트리니티의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광대한 테라스에 덩그러니 놓인 긴 테이블의 짧은 변에는 한 명씩 앉아 있다.

한쪽은 트리니티의 새하얀 제복을 입고, 큰 귀와 밝은색 긴 머리가 특징적인…… 신비를 베일에 두른 소녀.
한쪽은 총학생회의 새하얀 지정복과 코트, 신기루처럼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가 모호한 청년.

소녀는 긴 소매에 가려진 가늘고 작은 손가락으로 찻잔을 들고 향기를 즐긴다. 그 어깨에는 그녀의 애완동물인 참새목 새가 내려앉아 날개를 쉬고 있다. 우아한 오후라 칭하며 그림으로 그려도 될 법한 풍경이었지만, 지금 시간대는 한밤중에 가깝다. 하늘에 떠오른 헤일로는 낮보다 그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하고, 천막에 떠오른 별은 과거의 빛을 발한다. 테라스에서 한눈에 보이는 트리니티에는 인기척 하나 없고, 나무들의 술렁임과 밤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만 있다. 청년은 그 풍경을 눈에 담고 있다. 소녀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를.


────그래, 이건 꿈이다. 소녀의 신비가 만들어낸 꿈. 현실에 한없이 가까운, 대뇌피질이 만들어낸 허공의 세계. 구세주의 수태를 성모에게 알린 천사의 신비를 강하게 이어받은 소녀이기에, 이렇게 현실적인 꿈을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양쪽 모두 『이것은 꿈이다』라고 인식하는 자각몽 상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졸음,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다.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오랜 적대관계. 그것을 끝내기 위한 협약.」

청년과 소녀의 거리는 떨어져 있다. 긴 테이블의 긴 변, 약 7m 미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청년의 귀에 분명히 닿았다. 명료하게, 선명하게, 만에 하나라도 잘못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소녀의 귀에도 청년의 숨소리나 옷이 스치는 소리는 닿고 있다. 자신의 모든 율동이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에 있는 맞은편 상대에게 알려지는 특이한 상황. 꿈의 주인인 소녀는 입을 연다.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기에 쌓일 수밖에 없는 증오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신뢰를 쌓는 과정.」

소녀의 말은 마치 명저를 낭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말이 그 자체로 의지를 가지고 튀어 오르는 듯한 착각. 하지만, 결국은 착각. 말 자체에는 의지가 없다. 언제나 의지를 가지는 것은 말을 내뱉는 목구멍, 그 안쪽에 있는 마음이라는 불명료한 기관뿐. 그러므로, 이 말은 소녀의 의지였다.

「총명한 당신이라면 이미 해답을 얻었겠지만…… 더 쉽게 말하자면 게헨나와 트리니티의 평화협정,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신호로, 바람이 분다. 부드러운 산들바람. 불온한 침체나 오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기 아래로 침전되어 있던 잿빛 무언가를 뿌리째 뽑아가는 듯한 차가움. 세상의 한숨은 가차 없이 체온을 빼앗아간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의 실종으로, 이 조약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죠.」

고요해진 세상에 도자기들이 내는 소리는 울려 퍼진다. 밤하늘에 녹아들 듯 흡수된 음색은 아침을 알리는 듯하지만, 태양은 떠오르지 않는다. 밤의 장막은 드리워진 채.

「에덴은 고대의 경전에 나오는 낙원의 이름. 어째서 조약에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총학생회장의 악취미 같은 거겠죠.」

그 말에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청년은 그 표정을 아주 조금 어둡게 한다. 아주 조금, 가까이서 봐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변화. 하지만, 이 꿈의 주인인 소녀에게는 꿰뚫려 있었다.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총학생회장은 그런 인물이었다는 것뿐. 당신에게는 당신이 아는 총학생회장이 있고, 저에게는 제가 아는 총학생회장이 있습니다. 둘 다 진짜이고, 다른 한 면을 보고 있을 뿐이죠.」

소녀는 「이야기가 딴 데로 샜네요.」라며 화제를 돌렸다.


「────키보토스에 떠도는 일곱 개의 화두를 아시나요? 그 중 다섯 번째가 낙원에 대한 질문이죠.」


키보토스에 떠도는 일곱 개의 화두. 그것을 아는 인물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역사에 정통한 자나, 문화에 정통한 자. 그러한 사람들만이, 이 말을 안다.
하지만, 이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곳…… 키보토스의 진실에 도달한 자가, 이 화두가 나타내는 진실과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낙원에 도착한 사람의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예지몽으로 키보토스 창세의 기억을 가진 소녀.
홀로 키보토스의 진실에 도달한 결과, 사람이 아니게 된 청년.

이 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가장 가까운, 소녀의 목소리와 청년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모든 화두가 그렇듯,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이것은 낙원의 존재 증명에 대한 패러독스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그녀가 찾아낸 화두. 말을 곱씹고, 구축하고, 자신의 세계를 보았다. 역설.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전제,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추론, 거기서 도출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

「만약 낙원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곳에 도달한 사람은 충만한 만족과 기쁨 속에서 영원히 낙원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만약 낙원을 벗어났다면, 그 곳은 충만한 만족이 없는 것이며, 사실 낙원이 아니었던 것이죠. 따라서, 낙원에 도착한 자는 낙원 밖에서 관측될 수 없고,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화두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겹쳐졌다.

「결국…… 다섯 번째 화두는 전제부터가 증명 불가능한 물음인 것이죠.」


화두이라 칭하며, 낙원의 이름을 내고, 후세에 남긴 일곱 가지 질문…… 그 다섯 번째. 그것의 해답이 『처음부터 없다』는 것은 김이 빠져도 너무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나」라고 역설적으로 말을 잇는다.

「여기서 또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증명되지 못하는 진실은 무가치한 걸까요? 그런 냉소를 통해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일까요.」

소녀와 청년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화두의 진실에.

「에덴…… 경전에 나오는 낙원(파라다이스). 어디에도 없고, 찾을 수도 없는 곳. 즉, 몽상가들이 그려낸 달콤할 뿐인 허상.」

인류의 시조가 분명히 있었던 곳, 아직 신의 곁에 있을 수 있었던 시대. 그러나, 뱀에 유혹당해 지혜를 먹음으로써 추방당했다. 죄를 알게 된 우리는 돌아가는 것은 물론, 찾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게 된 아득히 먼 이상향. 그러므로, 소녀는 낙원을 허상이라 칭했다.


「보세요, 이 조약은 이름부터가 그런 것을 은유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결론은, 그런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에덴. 있을 리 없는 파라다이스. 두 학교가 손을 맞잡는 것은 분명 이상일 것이다.

그렇기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낙원 따위는 단순한 말장난.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막는 설탕색 알칼로이드.
신기루를 쫓다가,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선생님」

소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린다. 머리카락 색과 같은 소녀의 두 눈은 모든 허식을 걷어내고, 잔혹할 정도로 진실의 색을 띠었다. 응시하는 시선은 마찬가지로, 진실의 색채를 띠는 청년.

「아마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잔혹하리만큼, 이 세상의 진실.

「말하자면, 불쾌하고 불편하고 결국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이야기.」

────고통을 거듭하고, 유혈을 거듭하고, 죽음을 거듭해온 역사.

「사람을 의심하고, 진심을 의심해야 하는 냉소적인 이야기.」

────추악하고 추악한, 인간의 본성.

「우울하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결국 뒷맛이 쓴 이야기.」

────이 세상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습이라고, 소녀는 이방인에게 고한다. 마치, 그 천사가 성모에게 고한 것처럼.


「부디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소녀는 눈에 의지를 불태운다. 횃불 같은, 밝지 않는 밤을 비추는 인도하는 등불을.

「당신은, 그 십자가의 구세주가 걸었던 수난을 따라가게 될 겁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던, 그 최후까지. 당신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죽겠죠. 그건 바꿀 수 없습니다. 바꾸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니까요.」

정해진 운명. 저주와 같은 그의 단명. 나아간다는 것은 끝에 가까워진다는 것. 걸으면 걸을수록 그는 죽음을 재촉하게 된다.
소녀라고 해서,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걸어야만 하죠.」

수많은 소원을 짊어졌다. 무수한 미소를 보상으로 삼았다. 그렇게, 그는 별(미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그는 줄곧, 별(희망)을 찾아왔다.


「그것이, 선생님…… 『이 앞』을 선택하고, 세계(키보토스)가 아닌 진화를 잘못한 우리들의 편에 서서, 신비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했던, 당신의 의무이니까요.」

소녀의 말을 그는 그저 조용히 곱씹는다. 이 선택의 책임을.


────그날, 제시된 두 가지 선택지. 별의 편에 설 것인가, 지성체의 편에 설 것인가. 상반되는 두 가지 선택지. 별을 선택하면 차기 생명을 키울 기반을 다지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성체의 편에 서면 모든 안식으로부터 버림받아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다.

그런, 최악의 두 가지 선택지. 그 결단을 재촉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반신인 총학생회장과 결별할 것을 알면서도, 학생들의 편에 서는 것을 조금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이것을 선택한 이상,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미소와 결별하고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소녀들과의 나날. 그것에 등을 돌린 것은, 그 세계에서 나날을 살아가는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누구보다 키보토스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그 소녀를 위해서였다.


아아, 그래──── 그녀를 대신해 그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그러므로, 이 답변에는 일절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후회도 주저함도 없었다.


「난 선생님이니까.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할 거야」

────즉, 이 앞(미래)을 꿈꿨던 책임을.


「슬픈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





트리니티 종합학원, 수많은 교실 중 하나. 고급 나무로 만든 책상과 의자, 호화로운 장식 전등(샹들리에),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문. 벽이나 천장에는 흰색과 금색을 기조로 한, 궁전의 한 방을 연상시키는 기품 있는 장식이 되어 있지만, 벽에 걸린 시계와 칠판, 그 근처에 있는 교탁이 분명 교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는 빈 교실 중 하나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보충수업부의 부실이자, 교실이자, 공부방. 네 명의 부원에게 너무 넓은 방은, 그 네 명이 친하게 옹기종기 모여 교탁 바로 앞에서 책상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 인상을 더욱 강하게 한다.

소녀들이 시선을 떨어뜨리는 곳에는 스테이플러로 묶인 프린트들. 기초부터 발전, 응용까지 폭넓게 망라한 문제집은 보충수업부의 고문이 만든 특별 제작품이며, 소녀들의 강점과 약점에 맞춰져 있다.
프린트를 만드는 데 든 작업량과 시간이 방대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지 않지만, '평소 일에 비하면 훨씬 쉬워'라고 만든 본인은 웃을 것이다.

소녀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싸매고. 이러쿵저러쿵, 이것이라면 풀 수 있을까? 시행착착의 반복. 그것을 반복하며, 실전에 대비한다. 별다른 일 없는 어느 날 오후, 보충수업부의 활동 풍경이었다.

교실을 지배하는 소리는 글씨 쓰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 열린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가득 차 있어, 여름의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다.

교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은 선생님은 바람 소리와 교실 소리를 들으며 손에 든 책을 넘긴다. 소녀들이 문제에 몰두하듯이, 그 역시 글자와 씨름한다. 그 자신이 그렇게까지 독서가는 아니지만, 무료한 시간에 책을 펼치는 감성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 것 자체도 좋아한다. 종이의 감촉, 잉크와 종이가 섞인 독특한 향기, 혹은 페이지를 넘기는 동작 그 자체. 디지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시각 정보 외의 독서…… 물론, 이건 우이나 시미코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가끔씩, 공부에 힘쓰는 소녀들에게 시선을 보내며 책을 읽어 나간다. 가져온 일도 마무리된 온화한 오후, 선생님은 오랜만에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온화한 시간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프린트와 씨름하는 학생들 중에서 펜이 멈추는 횟수와 시간이 가장 길었던 소녀가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더는 싫어어어엇!」


정적이 지배하는 온화한 오후는 소녀의 짜증이라고 부를 법한 목소리에 의해 끝을 고한다. 기세 좋게 일어서서, 쥐고 있던 펜을 책상에 내리친 그녀는 시모에 코하루. 정의실현부 소속임을 나타내는 제복은 약간 오버사이즈로, 어깨 너비나 소매 길이가 맞지 않는다. 원래 체구가 작고 여린 그녀지만, 큰 제복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허리에 있는 작은 검은 날개와 머리의 검은 날개는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듯 파닥파닥 흔들리고, 그 바람에 묶인 분홍색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이런 거 못 해먹겠어! 모르겠어! 재미없어! 귀찮아! 이것도 저것도, 전부 선생님 탓이야!」
「어, 저요……?」

갑작스러운, 신경질적인 책임 전가에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책을 덮는다. 그는 「뭐, 학생의 성적 부진은 선생의 부덕의 소치라고 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중얼거리고 코하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고양이 같은 눈으로 선생님을 노려본다. 그 얼굴에는 '전혀 모르겠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듯했고, 대충 어딘가에서 문제에 막혀서 맴돌고 있는 것이리라 짐작한다.

모르는 것도, 재미없는 것도, 귀찮은 것도 이해하고, 그걸 선생(나)의 탓으로 돌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나중에 곤란해지는 것은 코하루 자신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여기서는 제대로 책상에 앉혀, 문제를 풀게 해야 한다.

그는 '대체 어디서 막혔을까'라고 생각하며. 가슴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일어서려 하자…… 코하루의 언행을 꾸짖듯, 혹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듯 한 학생이 일어섰다.


「어머나, 코하루 쨩. 그렇게 말씀하시면 선생님의 입맛이 쓰잖아요.」


코하루와 비슷한 머리색. 코하루와 정반대되는 새하얀 지정 제복. 제대로 먹고 있는 건지 걱정될 정도로 여린 코하루와 달리,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여성의 몸매. 어떤 의미로는, 보충수업부에서 가장 문제아이며 손이 많이 가는 귀여운 아이(학생)…… 우라와 하나코는 차분하고 느긋한 말투로, 코하루를 달래듯이 어깨에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순식간에, 고양이가 털을 곤두세우듯이 어깨를 움츠리는 코하루. 얼굴은 당황스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아주 조금의 다른 감정. 고양이 같은 눈동자를 크게 뜬 코하루를 향해, 하나코의 비취색 눈동자는 요염하게 가늘어졌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명백했다.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저희를 도우러 오신 분……. 시험에 낙제를 당한 건 원칙적으로는 코하루 쨩의 책임이니까…….」
「으윽……!」

하나코가 늘어놓는 말들은 놀랍도록 모두 정론이며, 올바름의 폭력이었다. 거기에 얻어맞은 코하루는 신음 소리를 한 번 내고, 필사적으로 뇌내에서 반론을 모색한다. 그러나, 하나코가 늘어놓은 모든 말에 떠오르는 구절이 있기에, 반론다운 반론 따위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입에서 나온 것은, 반론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괴로운 변명과 핑계, 즉 도피였다.

「나, 나는 정의실현부니까! 수업을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 그래서 그런 거고!」


「그건 다른 정의실현부들도 마찬가지잖아. 정의부에서 낙제를 당한 건 코하루 네가 유일하고.」


코하루에게 허락된 유일한 도피조차, 하나코와 마찬가지로 정론의 폭력으로 짓밟은 소녀는 시라스 아즈사. 흰 긴 머리. 흰 날개. 전신에 흩뿌려진 꽃을 모티브로 한 액세서리들은 인형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고, 이 장식을 선택한 사람의 센스가 빛났다. 라벤더를 연상시키는 아즈사의 날카로우면서도 자애로 가득 찬 눈빛이 코하루를 꿰뚫자마자, 그녀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침묵했다.

정의실현부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게헨나 선도부와 필적하는 규모이며, 그 인원은 여단 하나에 필적한다. 그런 막대한 인원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성적 부진으로 낙제 직전까지 몰려 보충수업부에 던져진 것은 코하루뿐이다.
즉 정의실현부 멤버들은 모두, 바쁜 와중에도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코하루를 제외하고.
그리고 코하루의 동경의 대상인 하스미는, 부부장이라는 지극히 바쁜 자리에 있으면서도 성적이 우수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완전히 침묵하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에 무자비하게 추격타를 날리는 학생이 한 명.


「과연. 어머? 아즈사 쨩은 코하루 쨩이 바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요?」
「아니, 그 말도 맞지만. 나는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인생은 고통……인가요. 심오한 이야기네요.」
「하지만 괜찮아, 코하루. 나는 코하루의 좋은 점을 알고 있어. 공부가 인간의 전부가 아니야. 함께 힘내자, 코하루.」
「무, 무, 무슨 소리야!! 너희들도 전부 낙제잖아! 왜 나만 바보야? 그렇다고 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바보잖아!」

눈을 피하고 있던 현실이라는 이름의 칼에 난도질당하고, 게다가 위로의 말을 던져진 코하루는 분노에 차서 외친다. 자포자기, 막 나감, 뻔뻔함. 있는 힘껏 자신을 내세우는 그 모습은 결코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코하루의 말도 또한 옳다. 경위는 다르더라도, 모두 성적 부진이라는 낙인이 찍혀 보충수업부에 모인 멤버들이다. 코하루가 바보면 모두 바보, 틀린 말은 아무것도 없다.


「아, 아하하…… 저기…… 모두들……」


그 억지 주장처럼 들리는 말에 휘말린 것은, 모두가 귀여운 말다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홀로 묵묵히 펜을 움직이던 소녀, 아지타니 히후미. 자신을 평범하다고 칭하는 그녀는 확실히 코하루나 아즈사처럼 날개를 달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코처럼 뛰어난 몸매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페로로 가방이 트레이드마크인, 꽃다운 여고생이 바로 그녀다.

참고로, 그녀의 평범함 속에 숨겨진 비범함, 일탈성을 아는 선생님은 '어, 혹시 나도 포함된 건가?' 하고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코하루는 '상대해주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안 그래도 바보라고 불려도 딱히 화내지 않고, 침착한 '어른스러운 대응'을 하고 있었으니까. 히후미나 선생님은 물론이고, 하나코는 그저 놀고 있을 뿐이고, 아즈사는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 밖에 내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코하루가 보충수업부 학생 중 최연소라 해도, 그 차이는 겨우 한 학년.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짜증에 가까운 유치한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뿐이고, 흥분해 있는 것도 자신뿐.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다. 뱉은 침은 삼킬 수 없는 법이다.

「바보니까 보충수업부에 들기나 한 거잖아! 전부 바보잖아!」

머리색보다 훨씬 붉어진 뺨의 색 그대로, 코하루는 히후미, 하나코, 아즈사 순으로 손가락질한다. 히후미는 「아하하……」 하고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하나코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여동생을 보는 듯한 따뜻한 눈빛으로 코하루를 바라보고, 아즈사는 평소와 같은 투명한 표정. 철저히 상대해 주지 않는다고 인식한 코하루는 그대로 최대 성량과 기세로 선생님을 손가락질했다.

「너도오오!」
「나는 일단 선생님인데…… 아, 그리고 함부로 남을 손가락질하면 안 돼, 코하루」
「흐, 흐음, 시끄러워어엇! 선생님인 척하지 마!」
「선생님인 척이라니, 선생님인데……」
「아우…… 코하루 쨩…… 조금만 진정하고…….」

말을 퍼붓고 어깨로 숨을 쉬는 코하루를 달래려 히후미는 다가가지만, 그것으로는 코하루의 폭발을 막을 수 없다. 그녀는 방금 전의 기세 그대로, 책상을 쪼갤 듯한 기세로 양손을 상판에 짚었다.


「진정하게 생겼어! 모두 다 사이좋게 퇴학당하는데!」


그 목소리에는 현 상황에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과 후회스러움이 배어 있다. 결국, 보충수업부에 모여 바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이 상황을 기한 내에 타개하지 못해서 퇴학(게임 오버)당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퇴학당하면…… 정의실현부에서도 쫓겨나잖아……. 그것만큼은…….」
「물론이야. 나도 퇴학당할 생각은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참하게라도 발버둥쳐줄 거니까.」
「후후. 그치만 퇴학당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저, 저기요!!」

하나코의 말끝을 막아서듯 히후미가 드물게 큰 목소리를 낸다. 순간 네 명의 시선이 집중되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히후미는 약간 주춤거리지만, 지금 여기서 소리를 내지 않으면 계속 제각각인 방향으로 가다가 정말로 모두 퇴학당할 것이기에. 「아, 아우……. 그, 그러니까……」라며 말을 더듬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한다.

「지금 모인 건…… 그 퇴학을 막기 위해서니까……. 조금만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그러면 일주일 뒤에 저희는 사이좋게 전원 퇴학이…….」
「과연, 히후미쨩 말씀대로군요. 『머리를 맞댄다』라…… 좀 답답하지 않나요?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부분이 있달까, 약간 비겁하달까……」

그렇게 말하며, 하나코는 생각하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턱에 손을 얹고,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 히후미의 말의 울림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니면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개인적인 취향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히후미의 말이 하나코의 무언가에 닿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황홀할 정도로 멋진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들었다.

「여기서는 확실하게, 배를 맞댄다, 같은 표현이 좀 더…….」
「……?」
「아하하……」

하나코의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아즈사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히후미는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쓴웃음을 짓는다. 선생님은 '하나코다운 표현이네'라고 생각하며, 슬슬 공부로 돌아가게 해야 할까 하고 손목시계를 본다.

그리고──── 코하루만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하나코가 굳이 명확히 말하지 않았던, 말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었던 부분을 망상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새빨간 방향으로. 하나코의 말과 자신의 망상의 이중 공격으로 붉어진 뺨 그대로, 하나코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 지른다.

「하지 마! 음담패설은 사형이야! 금지야! 배를 왜 맞대는데? 어떻게 해야 그런 자세가 나오는데?」
「어머나? 역시 직접 실행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가 힘든 걸까요? 코하루 쨩……?」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하나코에게 점점 당황한 기색이 짙어진 코하루는,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치며 「……어? 어어어어!?」 하고 소리를 낸다. 그 광경은 마치 포식자와 피포식자. 코하루는 약간 눈물 어린 눈이었다.

「하, 하지 마! 다가오지 마! 아, 알고 싶지 않으니까!」
「에잇♡」

등을 돌려 전력으로 도주하려던 코하루의 첫 움직임을 정확히 꺾은 하나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깨달아 버린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강 건너 불 구경 하던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으, 으아아아! 하지마! 살려줘, 도와줘, 선생님, 선배님!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니까……!」
「아ー…… 히후미, 저기에 내가 막으려고 해도 섞여들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지?」
「아하하…… 저기, 그게…… 네」
「그렇지이…… 그런 연유로, 미안해 코하루. 나는 너를 구할 수 없어……」

아아, 얼마나 무력한가. 얼마나 한심한가. 딱히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지만, 사회적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성희롱하는 녀석이라고 쓰고 선생이라고 읽는다, 라고 불리는 날에는 그대로 목을 매달 수도 있다. 자신의 성별이 그녀들과 같았더라면 어쩌면……이라며 약간 핀트가 어긋난 참회를 하고 있자니, 마침내 하나코의 손이 코하루의 맨살에 부드럽게 닿았다.

「저, 제가 잘못했어요 선배님한테 반말해서 죄송해요! 으아아아아- 이제 그만 용서해주세요……!」

유일하게 하나코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선생님이 이 자리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였음에 절망하며, 이렇게 될 바에야 처음부터 다른 두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야 하지만, 그러나 생각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가령 힘이 들어갔다고 해도 위에서 손목을 억눌러 부드럽게 눕힌다.

하나코가 눈물 글썽이는 코하루를 갖고 놀며 압도하는 모습을…… 아즈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주로 하나코의 움직임을.

「흠. 백병전에서 적을 제압하는 기술이었군. 공부가 되었어. 하지만 나라면 거기서 관절부터 꺾겠어. 무의미한 손동작이 너무 많아. 어느 유파지? 유형을 읽을 수 없군……」
「아즈사는 몰라도 돼…… 넌 그 모습 그대로 있어 줘.」

코하루의 명예를 위해 선생님은 엉겨 붙어 있는 두 사람을 의도적으로 시야에서 제외하고, 아즈사의 눈을 손으로 가리자…… 히후미와 눈이 마주쳤다. 코하루와 마찬가지로 약간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감정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서, 선생님……」
「함께 힘내자, 히후미」
「자, 잘 부탁드립니다……」

험난하기 그지없는 현재 상황. 개성이 너무나도 강한 멤버들. 트리니티의 낙제 직전 학생들의 모임, 보충수업부.


아지타니 히후미. 시라스 아즈사. 우라와 하나코. 시모에 코하루.
언뜻 보면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소속도 학년도 다른 네 명의 소녀들이 왜 보충수업부 멤버로 모였을까.

애초에, 왜 보충수업부라는 동아리가 트리니티 종합학원에 설치되었고, 그 고문에 샬레의 선생님이 선택되었을까.


「이대로 가다간…… 저희는 모조리 퇴학이니까요…… 아우우…….」

히후미의 한숨 섞인 중얼거림은, 코하루의 수치심 섞인 비명에 의해 지워졌다.


────이야기의 발단은, 몇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꽃을 밟아도, 나비를 밟아도, 아프지 않게 됐어. 그때가 거짓말처럼. 아마, 곧 누군가의 시체를 밟아도 아프지 않게 될 것 같아. 누군가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그게, 두려워」


「나는 왜, 살아 있는 걸까」


마지막에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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