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Nagisaver
# 깍지 낀 그림자
나는 선생님의 넓은 등에 엎드려 몸의 무게를 거의 온전히 그에게 맡기고 있었다. 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은 힘없이 쥐어져 손톱이 손바닥의 연한 살을 파고들었지만, 조금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더 거대한 격랑에 휩쓸려 버렸기 때문이다. 크림색 드레스의 옷감은 내 눈물에 젖어 가슴에 달라붙었고, 차갑고 끈적한 그 감촉은 지금 내 심정과도 같았다. 나는 흐느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목구멍에는 달궈진 인두가 박혀 있는 듯했다.
「잠, 잠시만요!」
나는 매끄러운 테이블 위에서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뒤로 버둥거려, 조금 전 아무렇게나 놓아두었던 개인용 스마트폰을 간신히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티파티 테라스의 스마트 환경 제어 시스템을 실행해 '커튼 닫기' 명령을 내렸다.
「어째서…… 어째서 하필 저에게만 이토록 엄격하신 건가요……」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파편처럼 부서지고 쇳소리가 섞여 있었으며, 스스로도 낯설 만큼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이미 트리니티 권력의 정점인 키리후지 나기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의 고통은…… 대체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하나요……?」
아무도 없는 티파티실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마주하고, 각 파벌의 동향을 계산하며, 모든 세력의 이익을 조율하던 그 고독한 밤들. 영혼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듯한 그 압박감을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보충수업부를 위해 저와 대립하는 당신이 미워요…… 당신의 대의를 위해 저를 난처하게 만드는 당신이 미워요…… 문제아들을 돌보는 것만 좋아하면서, 트리니티의 업무에 짓눌려 무너져가는 저에게는 관심도 없는 당신이 너무나도 미워요……」
이 말들은 내가 과거에 스스로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가장 억울하면서도 정당한 변명이었다. 언젠가 내가 무너지는 날이 온다면, 이 이유들을 늘어놓으며 동정을 구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렇다. 그 위기들, 정적들, 트리니티를 분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음모들을 나는 냉혹할 정도의 정치적 수완으로 해결해 왔다. 함정을 파고,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치고, 가장 정밀한 계산을 통해 모든 위협을 관료 체계라는 교수대에 매달아 처단했다. 나의 두 손은 이미 오래전에 더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티파티 호스트'라는 견고한 뼈대가 그의 "미안해"라는 한마디에 허무하게 빠져나가자, '키리후지 나기사'라는 이름의 살과 피는 억눌리고 숨겨지고 잊혔던 기억의 홍수에 순식간에 휩쓸려 무너졌다. 피로감이 수많은 차가운 손이 되어 영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와 나의 모든 신경을 붙잡고, 저 바닥 없는 심연으로 끌어내리려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나 나의 이성이라는 제방을 무너뜨린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를 진정으로 파멸시킨 것은, 그 뜨겁고도 피할 길 없는 죄책감이었다.
나는 방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남자를 이용했다. 그를 체스판 위의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냉혹한 말로 여겼다. 그의 선량함과 책임감을 계산에 넣고, 정적들을 위해 준비한 죽음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그를 정확히 밀어 넣었다. 나 대신 가장 맹렬한 포화를 견디게 하고, 내가 짊어져야 할 비난을 대신 짊어지게 했다. 심지어 그 일이 끝난 뒤 그가 보낼 차가운 시선을 마주할 준비도, 그에게 영원히 '의심암귀'라는 낙인이 찍힐 준비도, 가장 신뢰하는 어른에게 버림받는 고통을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로 받아들일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단 하나, 그의 다정함만은 준비하지 못했다.
정치적인 추악한 계산으로 얼룩지고 수많은 냉혹한 명령서에 서명했던 나의 두 손이, 지금 그의 넓고 따뜻한 손바닥에 아무런 조건 없이 꽉 붙잡혀 있다.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체온은 심판의 낙인이 아니라…… 용서의 포옹이었다.
어째서인가요?
저는 스스로도 혐오스러울 괴물이 되어버렸는데, 어째서 당신은 저에게 이토록 다정하신 건가요? 저는 당신을 도구로만 여겼는데, 어째서 당신이 오히려 저에게 사과를 하시는 건가요?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선의가 달궈진 칼날처럼 나의 두터운 정치적 갑옷을 뚫고, 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던 가장 부드러운 영혼을 찔러왔다. 피로와 죄책감의 중첩은 파괴적인 정신적 해일이 되어 나의 모든 이성과 강인함, 위장을 깨끗이 씻어내 버렸다. 의식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시야는 눈물에 젖어 혼돈스러운 빛과 그림자로 번졌다. 세상의 소리는 멀어지고, 오직 그의 차분한 심장 소리와 부서진 상태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나의 절망적인 흐느낌만이 남았다.
격렬했던 흐느낌이 점차 잦아들고, 목구멍 사이로 간헐적이고 미세한 울음 섞인 숨소리만 새어 나왔다. 눈물이 다 마르고 나자 감각의 문이 다시 열리는 듯했지만, 밀려 들어오는 것은 고통의 홍수가 아닌 전혀 낯선 정보들이었다. 내가 기대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추상적인 '등'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견고하며 안정적인 열기를 내뿜는 남성의 몸이었다. 그의 체온은 우리 사이의 젖고 차가운 옷감을 뚫고 끊임없이 전달되어, 정서적 붕괴로 얼어붙었던 나의 피부 속으로 완만하게 스며들어 한기를 몰아냈다.
코끝을 맴도는 공기가 선명해졌다. 그것은 티파티실에 늘 감돌던 베르가모트 향의 얼 그레이 홍차 냄새가 아니라, 훨씬 더 침략적이고 존재감이 뚜렷한 복합적인 체취였다. 한 겹은 숲의 고요함을 담은 듯한 서늘한 코롱 향이었고, 그보다 깊은 곳에는 이토록 가까이서 느껴본 적 없는 성인 남성 특유의 살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달콤함이라곤 전혀 없는, 호르몬과 따스한 피부가 섞여 발효된 순수하고 원초적이며 부정할 수 없는 생명력의 냄새. 그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어 나의 중추 신경을 직접 자극하자, 죄책감과 피로로 깨끗이 비워졌던 심리적 방어선 위로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그것은 '두근거림'과 '호기심'이라는 이름의 생경한 감각이었다.
울음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나의 두 손은 무의식에 이끌려 그의 넓은 등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옷감은 탄탄한 결이 느껴졌고, 그 아래로는 그의 호흡에 맞춰 평온하게 들썩이는 단단한 광배근이 만져졌다. 나의 손바닥은 그의 탄탄한 허리 옆면에서 천천히 위로 올라가 툭 불거진 견갑골을 지나 넓고 듬직한 어깨에 닿았다. 나의 모든 나약함을 받아준 이 신체를 촉각으로 가늠하고 인지하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었으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안도감 섞인 쾌적함을 선사했다.
동시에 나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던 그의 넓은 손바닥도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의 손은 먼저 나의 회금색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려, 손가락 끝의 굳은살로 예민한 귓바퀴를 스치며 미세한 짜릿함을 남겼다. 이어서 그의 손바닥이 나의 뺨을 감싸 쥐었고, 엄지손가락은 눈가에 맺힌 습기를 소중한 도자기를 닦아내듯 부드럽게 반복해서 문질렀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이 더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의 손가락 끝이 나의 가늘고 하얀 목덜미에 닿았다. 그곳은 극도로 예민한 부위였기에,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미세한 압력에 나는 온몸을 움츠리며 억누를 수 없는 떨림을 내뱉었다. 하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심각한 모욕으로 간주했을 이 월권행위가 지금의 나에게는 그 어떤 경계심이나 불쾌감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성은 이미 마비된 듯했고, 오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나를 해방해 줄 강렬한 물리적 자극을 갈구하는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았다.
그의 손바닥은 멈추지 않고 목 아래의 연약한 피부를 지나 우아하고 곧게 뻗은 쇄골 위에 머물렀다. 그의 손가락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나의 쇄골 모양을 따라 그렸다. 어깨와 연결된 끝부분부터 가슴 중앙의 오목한 곳까지.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텅 비어버린 감각의 세계에는 선명하고 뜨거운 궤적이 새겨졌다.
나는 그가 마음껏 만지도록 내버려 둔 채 몸을 살짝 뒤로 젖혀 목의 곡선을 그의 손바닥 아래 온전히 드러냈다. 그것은 무언의 허락이었다. 이 순간 나는 탐욕스럽게 이 복합적이고 얽히고설킨 쾌감을 만끽했다. 강인한 존재에게 보호받는다는 안전함, 무조건적으로 용서받았다는 해방감, 그리고…… 한 남자의 손바닥이 나의 민감한 부위를 탐색하며 선사하는 순수하고도 어지러운 생리적 유열을.
쇄골 위에 머문 그의 손가락은 내 감각 세계의 유일한 좌표가 되었다. 굳은살이 박인 그 탐색적인 촉감은 열쇠가 되어 내 몸 안의 오래된 밀실을 열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망설임과 갈구가 뒤섞인 숨결이 새어 나왔을 때, 나 자신조차 전율을 느꼈다.
「...아... 선생님......」
그것은 더 이상 울음의 여운이 아니었다. 축축한 열기를 머금은, 완전히 새로운 음절이었다. 그것은 녹아내린 꿀처럼 부드럽고 끈적하게 나의 마지막 자존심과 이성을 함께 녹여버렸다. 나의 두 손은 마치 독립된 의지를 가진 것처럼 그의 넓은 등에서 떨어져, 내 쇄골에 머물러 있는 그의 커다란 손 위를 덮었다.
그의 손바닥은 내 것보다 한 바퀴는 더 컸고, 손가락 마디는 굵었으며, 오랜 업무로 다져진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은 거칠면서도 안심이 되는 힘으로 가득했다. 나의 가늘고 매끄러운 손가락이 그의 손바닥과 겹쳐지자 선명하고도 기이한 대비가 이루어졌다.
그는 주춤했다. 그의 손바닥 아래 근육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아마 나의 행동을 제지하는 신호, 무언의 거절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다.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키리후지 나기사라면 마땅히 이쯤에서 그를 밀쳐내고, 젖어버린 스커트를 정돈하며 '티파티 호스트'라는 완벽한 가면을 다시 써야 했다.
하지만 나의 몸은 나의 신분을 배신했다.
나의 손가락은 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가볍게 힘을 주어 쥐었고, 오해할 여지 없는 태도로 그의 손바닥을 이끌었다. 뼈가 도드라진 쇄골 부위를 떠나, 더 남쪽으로, 더 부드러운 곳으로, 내가 '지도자'가 아닌 '여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영역으로 그를 초대했다.
트리니티의 상징이자 수장으로서 상황과 예법에 맞는 다양한 의복으로 갈아입는 것은 나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차가운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입는 과정 중에, 나는 뜻밖에도 내 몸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울 속에서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가슴은 단순히 드레스의 맵시를 살려주는 신체 구조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끝부분에 솟아난 분홍빛 돌기는 옷감에 무심코 스칠 때마다 발가락 끝이 말려 들어갈 듯한 기묘하고 짜릿한 쾌감을 전해주곤 했다.
그것은 몇 안 되는 나만의 절대적인 비밀이자 위안이었다. 끝없는 공무와 권력 다툼에 짓눌려 숨이 막힐 듯한 깊은 밤, 티파티실의 문과 창문이 모두 잠긴 것을 확인하고 머리 위의 헤일로조차 극도의 피로로 대기 모드에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자신의 손으로 그 짧은 해방감을 선사하는 부드러운 원천을 탐색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잦은 일은 아니었다. 대개는 권태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침대에 닿는 순간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곤 했으니까. 나 자신의 손이 주는 촉감은 익숙하고 완만했으며, 온전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성 특유의 체온을 머금은 선생님의 거칠고 두툼한 커다란 손이 눈물에 젖어 반투명해진 크림색 옷감을 뚫고 전해주는 자극은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해일처럼 격렬하게 밀려오는 충격이었다.
그의 손바닥이 그곳을 완전히 덮었다. 옷감의 방해는 무의미해졌다. 그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와 묵직한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것들이 나의 왼쪽, 풍만하고 부드러운 살덩이를 짓눌러왔다. 그것은 온전히 감싸이고 철저히 점유당하는 기분이었다. 나의 몸은 통제력을 잃고 다시금 팽팽하게 긴장했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는 억누르지 못한 미세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더 이상 무의식적인 머무름이 아닌, 명확한 탐색의 의도를 담아 그 부드러운 반구 위를 천천히 주물렀다. 손가락 끝의 굳은살이 젖은 옷감 너머로 가장 예민한 꼭대기를 반복해서 마찰했다.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날카로운 전류가 그 한 점으로부터 폭발하여 척추를 타고 급상승해 뇌를 직격했다. 나의 모든 사고 능력은 순수한 생리적 유열에 씻겨 내려갔고, 시야에는 찰나의 백광마저 스쳤다. 그 감각은 깊은 밤 혼자서 위로를 얻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수백 배, 수천 배나 강렬했다. 옷감 아래의 분홍빛 유두는 순식간에 충혈되어 딱딱하게 꼿꼿이 섰고, 더 많고 무거운 자극을 갈구하듯 그의 손바닥을 집요하게 밀어 올렸다.
그의 손끝이 주는 자극은 정밀한 수술용 칼날처럼 뇌와 사지 사이의 신경 연결을 끊어놓았다. 가슴의 그 한 점으로부터 뜨거운 전기 불꽃이 끊임없이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유열의 충격 아래 나의 근육 조직들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힘이 풀린 것은 다리였다. 회색빛이 도는 검은색 스타킹에 감싸인 가늘고 긴 다리가 통제 불능 상태로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무릎에 힘이 빠져 더 이상 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몸은 그의 넓은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매끄러운 스타킹 소재가 그의 거친 옷감과 마찰하며 미세한 소리를 냈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질 것이라 생각한 순간, 강인하고 힘 있는 팔 하나가 신속하게 나의 등 뒤를 감싸 안으며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추락하던 나를 안정적으로 받아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린 뒤 자리에 앉았고, 나의 부드러운 상체는 그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안착했다.
자세가 급격히 변하자 허리에 달린 순백의 날개가 균형을 잃고 화들짝 펼쳐졌고, 넓은 날개 끝이 바람 소리를 내며 선생님의 뺨 옆을 스쳤다. 뒤이어 나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문장조차 되지 못한 파편화된 말들이 비어져 나왔다.
「아... 선생님... 아, 안 돼요... 제발... 살살해 주세요...」
그것은 거절이라기보다 쾌감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내뱉는 본능적인 비명에 가까웠다. 방금 내가 직접 그의 손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이 애원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마음에도 없는 말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나를 덮고 있던 커다란 손의 움직임을 오히려 더 빠르게 가져갔다.
그는 더 이상 부드럽게 주무르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끝의 굳은살로 빠르고 강하게 원을 그리며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새로운 도화선에 불이 붙는 듯했고, 더욱 맹렬한 쾌감의 파도가 나의 신경 중추로 밀려들었다. 눈앞의 세상이 빠르게 색을 잃어갔고, 시야는 점점 더 짙어지는 유백색의 빛무리에 점령당했다. 나의 근육들은 스스로 한계까지 팽팽해졌고, 등은 위를 향해 활처럼 휘어지며 그의 허벅지 위에서 튕겨 나갈 듯 우아하고도 긴박한 곡선을 그려냈다.
쾌감은 체내에서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쌓여갔고, 무형의 제방을 들이받았다. 나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과거 그 어떤 밤에 느꼈던 것보다 수백 배는 더 맹렬한 홍수가 아랫배 깊은 곳에서 형체를 갖추어 곧 터져 나오려 한다는 것을.
'그것'이…… 오고 있었다.
마침내 아랫배 깊은 곳에 쌓여있던 뜨거운 홍수가 거부할 수 없는 기세로 나의 이성과 신체의 마지막 제방을 무너뜨렸다.
신음과 흐느낌 사이의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왔다. 나의 몸은 위로 튀어 올랐고, 허리와 배의 근육들이 한계를 넘어 격렬하게 수축하며 내 몸 전체를 부러질 듯 과장된 C자 형태로 팽팽하게 만들었다. 뒷머리는 그의 허벅지에 강하게 눌렸고, 가느다란 목은 공기 중에 완전히 노출되어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해 보였다. 집어삼킬 듯한 쾌감의 폭풍 속에서 실체적인 감각을 찾기 위해 나는 미친 듯이 그를 붙잡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은 그의 단단한 복근 깊숙이 파고들었고, 손톱은 옷감을 뚫고 그의 피부를 파고들 기세였다. 다른 한 손은 그의 종아리를 죽어라 움켜쥐며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고정하려 애썼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몸 안을 찢어버릴 듯한 이 거대한 에너지를 배출하려 했다. 하지만 머리가 뒤로 젖혀진 자세 때문에 성대는 팽팽하게 당겨졌고 목구멍도 막혀버려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결국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내뱉는 헛된 숨소리와 음정조차 없는 흐느낌뿐이었다.
파괴적인 쾌감은 십수 초 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다. 그것은 끝없는 파도처럼 이미 백지가 되어버린 나의 의식을 몇 번이고 휩쓸었다. 마침내 그 힘이 썰물처럼 온몸 구석구석에서 빠져나가자, 한계까지 팽팽했던 근육들도 순식간에 모든 힘을 잃었다.
나는 뼈대가 빠져나간 인형처럼 완전히 축 늘어져 선생님의 품으로 쓰러졌다. 의식은 천천히 돌아왔지만 신체의 제어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입을 벌린 채 쉴 새 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금의 극심한 흥분으로 부족해진 산소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는 것뿐이었다. 가슴은 격렬하게 오르내렸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구사일생한 이의 떨림이 묻어났다.
절정의 여운은 미약한 전류가 되어 사지 말단의 신경 사이를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의식이 혼미한 채 탈력감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선생님의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흙탕물에 떨어지는 맑은 샘물처럼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다.
「나기사, 여기서 이런 짓을 하는 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네.」
그의 말은 열쇠가 되어 멈춰있던 나의 의지를 다시 가동시켰다. 위험하다.
그렇다, 이곳은 티파티의 테라스이며 트리니티 권력의 중추다. 나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는 두 팔로 그의 가슴을 짚고, 남아있는 모든 근육을 쥐어짜 그의 허벅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흠뻑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차갑고 미끈거렸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젖은 스타킹이 그의 바지 옷감과 마찰하며 끈적한 소리를 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안산형의 풍만한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그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묵직하게 내려앉으며 마주 보고 앉는 자세를 취했다. 이 동작만으로도 방금 모은 기력이 다 소진되어, 나는 다시 몸을 숙여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하아... 하아... 오후 3시...」
숨을 고르며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서 핵심 정보를 끄집어냈다.
「...3시가 되어야 첫 방문객이 와요... 미카 일행이 저와 티타임을 가지러 올 거예요. 그전까지는 아무도 오지 않아요.」
이 대목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인격이 잠시 돌아와 소중한 상식과 오늘의 일정을 일깨워주었다. 나의 말투는 방금 전 통제력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실금하던 소녀가 환상이었던 것처럼 다시 명료하고 차분해졌다.
「당신에게 개인적인 보고를 드리기 위해 오전 내내 시간을 비워두었으니까요.」
논리가 돌아왔고 계산이 돌아왔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나의 계획 안에 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독대의 시간은 내가 정교하게 배치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을 내뱉으려 할 때, 겨우 탈환했던 이성은 다시금 무너져 내렸다.
「그전까지 저의 시간은 전부…… 전부 당신의 것이에요.」
나의 목소리는 통제력을 잃고 점점 작아졌으며 속도도 느려졌다. 마지막 몇 글자는 거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이 결론은 '티파티 호스트'가 '고문'에게 보고하는 신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 말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도, 이익의 교환도 없었다. 그저…… 사랑에 빠진 소녀가 정인에게 바치는 아무런 보상 없는 헌신처럼 순수할 뿐이었다.
「그래?」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분명하고도 다정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위에 올라앉아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나의 처량한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나기사의 상태를 보니, 전혀 진지한 보고를 하는 모습 같지는 않은걸?」
그 한마디에 겨우 식어가던 피가 다시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뜨거운 열기가 목덜미에서부터 순식간에 번져 두 뺨을 태우고 귓불까지 치달았다. 얼굴 피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그 어떤 정치적 추궁보다도 수치스러웠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짓궂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나는 패배를 인정하듯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더 깊이 숙여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그럼 저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요...?」
수치심에 떨리는 목소리가 모기 소리만큼 작게 흘러나왔다.
「저... 저는 이런 방면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제발, 선생님이... 저를 이끌어 주세요...」
나는 모든 판단과 행동의 권한을 심판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그에게 넘겼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온갖 반응들을 예상해 보았다. 더 진전된 직접적인 신체 접촉일 수도, 혹은 여기서 멈추는 다정한 거절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고, 내가 세워둔 모든 심리적 방어 기제를 산산조각 냈다.
「알고 있니, 나기사.」
그의 말투는 진지하고 엄숙해졌고, 내 등에 머물던 손을 천천히 들어 나의 회금색 장발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키보토스의 몇 안 되는 어른으로서 대부분의 학생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권한을 가지고 있어. 그동안 적지 않은 학생들이 나에게 연심을 고백해 왔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단다. 그것은 두 독립된 영혼 사이의 진정한 교감이라기보다 '스승'이나 '구원자'라는 신분에 대한 동경에 가깝다는 걸. 하지만 너만은 달라, 나기사.」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나는 온몸을 떨었다.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가 극도의 놀라움으로 번쩍 뜨였고, 나를 향한 그의 최종적인 평가를 기다리며 거부할 수 없는 시선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너는 나와 같은 체스판 위에 서서 대등하게 수싸움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너의 정치적 수완, 지략, 선구안은 나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아.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트리니티라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 때문에 네가 스스로 얼마나 차갑고 딱딱한 가면을 써야만 했는지. 그리고 나는 네가 가장 힘들 때 오해로 인해 너를 엄하게 꾸짖으며 너를 더 옭아매는 공범이 되기도 했지.」
그의 엄지손가락이 나의 뺨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의 눈빛은 죄책감과 애틋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너의 이 고백만큼은, 사제 관계와 동경을 넘어 대등한 영혼 위에 세워진 이 감정만큼은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 아니…… 받아들여야만 해. 미안해, 고생 많았어, 나기사.」
또 그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한 조각이 아니라,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더할 나위 없는 복음이었다. 눈물이 다시 억제할 수 없이 쏟아져 시야가 순식간에 흐려졌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엉망이 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다시 눈을 질끈 감으며 마지막 헛된 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눈앞의 세상이 어둠에 잠긴 찰나, 뜨겁고 부드러운 감촉이 정확하게 나의 입술을 덮었다.
그의 입술이었다.
뇌 속이 순식간에 백지가 되었다. 그는 애틋하게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밀착이었으나 곧 거부할 수 없는 탐색으로 변했다. 경악으로 살짝 벌어진 나의 입술 사이로 그가 파고들 기회를 주었다. 그의 혀가 나의 치열을 가르고 들어왔다. 부정할 수 없는 성인 남성의 기운을 머금은 채 구강 내부를 탐했다. 나는 잠시 굳어 있었으나 곧 신체적 본능이 이성을 압도했고, 서툴고 투박하게 나의 혀로 그에게 응답했다. 두 사람의 혀는 질서 없이 엉켜 서로의 구강 내 축축하고 뜨거운 미지의 영역을 탐험했다. 이 입맞춤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숨이 가빠올 정도였지만 그 누구도 먼저 멈추려 하지 않았다. 마치 과거의 모든 오해와 고통, 격차를 이 깊은 입맞춤 속에서 완전히 소멸시키고 녹여버리려는 듯이.
깊은 입맞춤이 마침내 끝났다. 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떨어졌고, 입술 사이에는 애매하고 투명한 타액의 실선이 이어졌다. 선생님의 두 손은 나의 어깨를 붙잡고 다정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하며 나의 몸을 이끌었다. 나는 그 힘에 온전히 순응하며 다리에 힘을 빼고 그의 허벅지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무릎이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닿으며 가벼운 둔탁음이 났다. 한기가 회색빛 스타킹 옷감을 뚫고 무릎 피부로 선명하게 전달되어, 격렬한 키스로 달아올랐던 머리가 조금은 차분해졌다.
스커트 자락을 정돈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긴 테이블의 상석으로 걸어가 과거 수많은 회의 시작 전처럼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나의 자리이며 트리니티 권력의 정점에 오른 뒤 당연하게 누려온 증명이었다. 나는 과거 이 방에 대해 결벽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며 그 어떤 품위 없는 사건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의 손가락 끝이 테이블 위에 놓인 트리니티 교장이 새겨진 은제 찻주전자에 살짝 닿았다. 주전자 몸체에서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예상대로 우리 두 사람의 길고 뜨거웠던 정사 때문에 주전자 속의 홍차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예법에 맞게 새로운 따뜻한 차를 준비하려 일어서려던 찰나, 맞은편의 선생님이 갑자기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피로와 고통이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약간 기운 없는 모습으로 찻주전자를 가리켰다.
만약 평범한 방문객이었다면, 설령 다른 학원의 최고 지도자였다 하더라도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티파티의 품위 있고 결점 없는 예법을 유지하는 것은 키리후지 나기사의 책임이자 자부심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선생님이다. 내가 꿰뚫어 보았고 또 나를 꿰뚫어 본, 그를 이용했으면서도 그에게 구원받은, 나의 사랑과 욕망이 복잡하게 얽힌 유일무이한 그였다.
모든 규칙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순종적으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가 차가운 주전자를 들어 그의 잔을 가득 채웠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고 목울대가 상하로 움직였다. 나는 묵묵히 그를 위해 두 번째 잔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 가시덩굴 문양이 새겨진 나의 본차이나 찻잔에도 똑같이 차가운 차를 가득 따랐다.
트리니티에서 가장 신성하고 엄숙한 권력의 중추에서, 수많은 역사를 지켜본 이 회의용 테이블 위에서, 나와 그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넋을 잃었고 손의 움직임조차 멈추는 것을 잊었다. 호박색의 차가운 찻물이 찻잔 가장자리를 넘어 흘러넘쳤고, 하얀 테이블보 위에 짙은 색의 얼룩을 빠르게 만들어 나갔다.
「아!」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당황해 냅킨을 집어 들고 얼룩을 힘껏 닦아냈다. 맞은편의 선생님이 나의 이 실수를 눈치채지 못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게다가 나는 방금 가장 품위 없고 티파티의 접대 풍격에 어긋나는 짓을 저질렀다. 선생님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그가 피로를 보였을 때 차를 다시 우려내는 대신 그의 가장 직접적인 욕구를 우선시했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찻물을 엎지르며 자부심 가득했던 여유마저 잃어버렸다.
이 순간 나는 더 이상 우아함과 예절로 빈객을 대접하는 티파티 호스트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격정적인 시간이 지난 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반려를 정성껏 보살피는, 사랑에 빠진 연인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차가운 유리 화면을 가볍게 두드려 환경 제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두꺼운 커튼이 양옆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정교한 기술력이 느껴지는 평온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정오의 따가운 햇살이 다시 한번 여과 없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와 우리 사이의 모호하고 어두운 어둠을 완전히 몰아냈다. 빛이 닿는 곳마다 모든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테이블보 위의 짙은 찻물 얼룩, 바닥의 반쯤 말라가는 유백색 웅덩이들이 이 가차 없는 조명 아래 유독 눈에 띄었다.
커튼이 움직이며 기계음을 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방금 나와 영육이 하나가 된 이 남자에게 마지막이자 가장 철저한 '총공격'을 가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
나의 목소리는 예전의 평온함과 냉정함을 되찾았다. 나는 손을 들어 완전히 펼쳐지고 있는 정교한 자수 문양의 커튼을 가리켰다. 선생님의 시선은 나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따라 위를 향했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에서 맞춤 제작한 거예요. 꽤 많은 비용이 들었죠. 저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봐도 적지 않은 지출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의 얼굴에 어린 약간의 의구심을 확인한 나는 더 이상의 서술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자치구가 금은보화가 넘쳐나고 부가 흐르는 곳이며, 트리니티의 모든 학생이 걱정 없는 풍족한 아가씨들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답니다.」
나의 말투는 평온했고 발음은 명료했다. 마치 최고 수준의 정치 보고를 수행하는 듯했다.
「우리의 행정 권력이 온전히 닿지 않는 변두리 지역에는 여전히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아요.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암시장에서는 매일같이 죄악과 폭력이 싹트고 있죠. 저의 정보 부서 조사에 따르면, 이것은 거대 다국적 상업 실체인 '카이저 그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미 티파티를 주도해 트리니티 자치구 내에서의 그들의 회색 사업 대부분을 행정 명령으로 금지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보복과 정치적 압박을 위해 현재 수익보다 비용이 훨씬 큰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트리니티의 질서와 상업 환경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있죠. 정의실현부의 전술 부대를 보내 겉으로 드러난 골칫거리들을 치우고는 있지만, 그것은 결국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만약 당신이…… 당신이 트리니티의 관할권 밖에서 그들의 공급망이나 자금줄의 허점을 찾아내 공략해 주신다면……」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미 진지해진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동시에 트리니티와 게헨나 학원의 국경 상황은 여전히 역사적 유업으로 인해 고도의 긴장 상태에 있으며, 양측의 불신과 적개심은 단기간에 가라앉기 힘들어요. 만약 당신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광범위한 인맥과 모든 이를 설득할 수 있는 개인적 명망을 이용해 게헨나의 행정관과 선도부 지휘관으로부터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상호 불가침 확약을 받아내 주신다면, 아마 우리 양측의 팽팽한 신경도 불필요한 압박을 조금은 덜 수 있겠죠……」
나는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며, 명목상의 게헨나 원수이자 만마전의 의장인 하누마 마코토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예전 정상회담에서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결국 내린 결론은…… 너무나 천진하다는 것이었다.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스마트 커튼이 완전히 열림에 따라 금색 폭포처럼 트리니티 권력의 상징인 티파티 테라스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은 정교하게 디자인된 우아한 가구들 위에 투영되어 바닥에 얼룩덜룩한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나는 상석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과도한 삽입과 마찰로 인한 허벅지 안쪽의 화끈거리는 통증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끈적하고 차가운 체액과 뒤섞여, 크림색 스커트 자락 아래에서 은밀하면서도 집요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체 가장 깊은 곳에서 전해지는 이 시큰거림과 충만감은 신경 말단을 타고 척추를 따라 올라왔으나, 기이하게도 나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아졌다. 코끝을 맴도는 것은 얼 그레이 홍차의 쌉싸름한 시트러스 향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 아직 가시지 않은 성인 남성의 농밀한 머스크 향과 땀이 섞인 몽롱한 체취였다.
나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맞은편에 앉은 선생님을 응시했다. 그의 벌어진 옷깃과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방금 내가 새겨넣은 광기 어린 침몰의 흔적이었다.
나는 도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방금 차가운 회의용 테이블 위에서 나의 몸과 마음을 점유했던 이 남자가, 그 뒤 정치적 천칭 위에서도 나에게 아주 미세한 편애라도 보여주기를 바라는 도박이었다. 나는 그 온기가 담긴 편애를 트리니티의 독버섯들을 도려낼 가장 날카로운 칼날로 바꿀 생각이었다.
나의 손가락 끝은 본차이나 찻잔 가장자리의 돌출된 금색 가시덩굴 문양을 천천히 문질렀다. 차갑고 매끄러운 촉감은 나를 완전히 냉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의 쟁반 위에 놓인 추들의 무게를 하나하나 가늠하기 시작했다.
광활하고 기후가 온화한 트리니티 자치구 내에서 트리니티 종합학원은 단연 가장 빛나고 탐나는 명주와 같다. 그리고 내가 딛고 있는 이 짙은 붉은색 벨벳 카펫이 깔린 중앙 행정 구역은 그 핵심 중의 핵심이며, 타인의 침범을 불허하는 나의 전속 영지다. 전임 티파티의 노련한 여우들 덕분에 수많은 정치적 수싸움과 타협을 거쳐 내가 물려받은 것은 명목상으로만 연방학생회에 고개를 숙일 뿐 실질적으로는 독립적인 군정과 재정 대권을 쥔 실권자의 왕좌였다.
하지만 이 왕관이 언제나 이토록 견고했던 것은 아니다.
기억의 문이 열리며 지하실의 서류 더미처럼 숨 막히는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미카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 권력을 박탈당하고 독방에 갇혔을 때였고, 세이아는 습격으로 인해 긴 혼수상태에 빠졌던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 나의 등 뒤에 달린 날개는 납덩이라도 달린 듯 무거워 펼칠 수조차 없었다. 세 파벌 중 이미 은퇴했으나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원로들이 피 냄새를 맡은 대머리독수리처럼 튀어나와 '감호위원회'라는 기형적인 기구를 조직했다.
숨을 쉴 때마다 쇳가루 냄새가 나는 듯한 압박의 세월이었다. 원래 나의 것이었던 이 티파티 관저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테이블을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와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내가 내놓는 티파티 인장이 찍힌 모든 정령은 그들에 의해 온갖 그럴싸한 이유로 무참히 '거부' 도장이 찍혔다. 나의 권력은 책상 서랍 속에 갇혔고 이 무거운 오크나무 문조차 나서기 힘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트리니티라는 거함이 내분으로 침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자존심을 굽히고 시스터후드 대성당의 그 잠이 올 듯한 진한 향내를 견디며 사쿠라코와 살얼음판 같은 연대를 이어갔다. 종이가 누렇게 변해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고서들을 탐독하며, 신입생들은 이제 알지도 못하는 번잡한 예법과 난해한 교리들을 나의 설전 무기로 삼아 저 늙은 여우들의 포위망 속에서 티파티 호스트라는 위태로운 위엄을 간신히 유지했다.
그러다 아리우스의 위기가 돌풍처럼 키보토스 전체를 휩쓸었다. 그것은 단순히 재앙이 아니라 나에게는 정적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완벽한 사냥터였다.
무능하고 오만한 '임시 대표'들은 어리석었다. 그들은 구호 물자 배정에서 겉과 속이 다른 태도를 보였고 관료주의적 절차 때문에 전선 보급은 심각하게 지체되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그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진흙탕과 포연 속을 누비던 선생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이다. 민심은 지하 가스관에 쌓인 가스와 같아서 작은 불꽃 하나만으로도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찻집 그늘에 앉아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가볍게 나의 불씨를 던졌다. 트리니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자율성이 강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구호기사단을 아리우스 의료 지원에 파견했다. 동시에 '죄를 씻는다'는 구실을 붙여 복잡한 물자 배분과 후방 지원 업무를 모조리 저 임시 대표들의 어깨 위에 묵직하게 지워버렸다.
나는 미네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주 뒤 무거운 군화 소리가 티파티실 밖의 정적을 깨뜨렸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감각적 충격을 생생히 기억한다. 복도에서 들려오던 방패와 갑옷이 부딪히는 차갑고 광포한 금속 마찰음. 문이 거칠게 열리고 미네 단장이 소독약 냄새와 채 가시지 않은 화약 냄새를 풍기며 분노한 전쟁의 신처럼 난입했다. 유리창을 깨뜨릴 듯한 그녀의 포효가 돔 아래에 메아리쳤고, 그녀는 행정 효율 저하로 부상병들이 감염된 보고서 뭉치를 저 나태한 대변인들의 머리 위에 사정없이 집어던졌다.
그 순간 평소 기고만장하던 임시 대표들의 얼굴이 질 나쁜 양피지처럼 창백해지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저 상석에 앉아 찻잔의 열기를 가볍게 불어내며, 입가에 칼날처럼 차가운 미소를 살짝 띄웠을 뿐이다.
미네의 분노는 나의 가장 완벽한 창이 되었다. 구호기사단의 항의와 전선 학생들의 광범위한 분노를 빌미로 나는 철권통치를 휘둘러 트리니티의 권력 줄기에 기생하던 흡혈귀들을 철저히 청산하고 권력을 다시 나의 손안으로 거두어들였다.
뒤이어 운명의 천칭은 마침내 나에게 완전히 기울었다.
공기 중에 다시 익숙하고 쌉싸름한 약초 차 향기가 감돌았다. 잠들어 있던 나의 친구 세이아가 마침내 긴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여전히 미래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녀의 눈동자와 티파티 자리에 다시 앉은 그녀의 모습은 가장 강력한 강심제가 되어, 나의 '부당한 권력 승계'에 관한 모든 유언비어를 순식간에 잠재우고 나의 권위를 다시금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위기의 먹구름이 걷히고 아리우스와 트리니티의 교섭에 관한 진실된 역사는 인쇄기 잉크 향기와 함께 책자로 엮여 세상에 공개되었다. 햇살이 다시 트리니티의 고딕 양식 첨탑을 비추었다. 미카의 실각 때문에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아리우스와의 평화 프로세스에 격렬히 반대했던 파테르 파벌 구성원들 역시 진실 앞에 긴장을 풀었고 반대의 물결은 썰물처럼 서서히 잦아들었다.
권력의 퍼즐은 피와 불의 세례를 거친 뒤 마침내 완벽하게 맞춰졌다.
나는 시선을 먼 기억에서 거두어 다시 눈앞의 남자에게 집중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폐 속에 남아있던 미련과 나약함을 모조리 뱉어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등 뒤의 순백 날개가 미세하게 펼쳐지며 깃털이 스치는 소리를 냈다.
이제 나의 두 손은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전임자들이 못 본 척하고 언급을 피하며 트리니티의 근간을 갉아먹게 내버려 둔 만성 독약 같은 국경 마찰과 경제적 은폐물들……
나는 선생님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단 1초도. 나의 예민한 정치적 직관은 혈관 속을 흐르는 피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며 고막을 찢을 듯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방금 섞였던 체온이 아직 우리 피부에 남아 있을 때, 지금 이 가장 친밀한 유대를 빌려 트리니티의 근간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궤양들을 그에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제를 후대에 떠넘기는 것을 싫어한다. 거드름 피우는 정치인들은 늘 자신의 무능함을 '후대의 지혜를 믿는다'는 말로 포장하곤 하지만, 사실 후대들은 그 난장판을 보며 한숨지으며 '역사적 유업'이라 부르고 마취된 채 고통을 감내할 뿐이다. 나 키리후지 나기사는 결코 그런 나약한 조타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나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대리석처럼 차갑고 단단했으나 숨을 쉴 때마다 그가 붉은 흔적을 남긴 가슴 피부가 실크 속옷과 마찰하며 미세한 저릿함을 전해왔다.
「눈 있는 자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트리니티의 표면적인 위협일 뿐이에요. 하지만 선생님, 우리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나는 시선을 내려 찻잔 속의 식어버린, 돔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추는 호박색 찻물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트리니티 학생들에게 키보토스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며 그녀들의 풍족한 생활과 '아가씨'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주고 있어요. 그런 보조금이 없더라도 매년 막대한 돈을 아끼지 않는 타교 교류생들이 트리니티의 고전, 우아함, 문화와 철학에 이끌려 끊임없이 이곳을 찾죠. 이런 화려함은 우리 경제 체제에서 가장 거대하면서도 기형적인 지출을 구성하고 있어요.」
나의 손가락은 무의식중에 힘이 들어가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방금 언급했듯이 게헨나의 학생회인 만마전은 이미 기능 상실 직전이에요. 정규 무력의 위협은 차치하더라도, 국경에서 끊임없이 소동을 피우는 군벌 조직들은 우리가 국방 안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게 만들며 트리니티의 부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죠.」
나는 고개를 들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말투에는 미세한 애원과 유도가 섞여 있었다.
「만약 당신이 모두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트리니티 아이들에게 과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도리를 가르쳐 주신다면. 만약 당신이 '티파티 개인 특사'로서 게헨나의 막무가내인 온천개발부와 고군분투하는 선도부에 엄중한 경고를 전달해 주신다면……」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키보토스 전체의 거대한 판도를 숨 막히는 압박감과 함께 이 남자 앞에 펼쳐놓았다.
「우리는 매달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로부터 엄청난 양의 최신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주문해 트리니티의 생산력을 유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정치적, 무력적 담보가 없는 타교 간의 공급망은 위기 앞에서 종잇장처럼 취약하죠. 북해에서는 오디세이 해양학원과 광범위한 분쟁 해역을 두고 매일같이 짠 바닷바람에 화약 냄새가 섞여 들고 있지만, 트리니티 해군 함대를 출동시켜 유혈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제가 결코 원치 않는 비극이에요. 그리고 붉은겨울은……」
나는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마치 그곳에서 매캐한 저질 석탄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녀들의 막대한 가스 자원이 트리니티의 산업 엔진을 돌리고 있지만, 그들 내부의 끝없는 쿠데타와 불안정성은 저를 밤잠 설치게 하죠. 산해경 역시 현룡문의 최근 개방 정책이 급한 불을 꺼주긴 했지만, 그 젊은 문주는 우리와 지나치게 가깝다는 이유로 내부에서 가혹한 여론 압박을 견디고 있는 모양이고요……」
「만약 이 문제들을,」
한꺼번에 너무 많은 국가 기밀을 쏟아낸 탓에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선생님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망으로 직접 조율해 주신다면…… 트리니티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를 도와주세요……」
나는 말을 멈췄다. 선생님의 지금 표정을 선명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늘 다정과 포용으로 가득하던 그의 눈이 지금은 약간 커진 채 나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살짝 벌어졌고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무언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트리니티 최고 수준의 기밀과 치명적인 약점들을 이렇게 아무런 여과 없이 나에게 다 쏟아내다니……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입막음을 위해 나를 죽이지는 않겠지?'
그의 그런 모습을 보자 나의 마음속에 있던 '완벽한 정치가'라는 견고한 성벽이 이 화창한 오후에 맑고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충분하다. 계산도 충분했고 강인함도 충분했다.
잠시 멈춘 뒤, 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나는 마침내 마음속 마지막이자 가장 두꺼운 위장을 벗겨냈다. 거창한 단어들을 버리고 이익 교환의 칩들을 내려놓은 채, 피 흘리고 상처 입은 진심을 온전히 그의 앞에 드러냈다.
「저는……」
나의 목소리가 너무나 생소하게 들렸다. 더 이상 냉철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았으며, 짙은 콧소리와 부서진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저는 그저…… 트리니티가 영원히 가장 훌륭한 학원이기를 바랄 뿐이에요. 햇살 아래 걷는 모든 학생이 트리니티의 일원임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기를 바라요. 그리고 언젠가 그녀들이 어른이 되어 이 학원 생활을 되돌아볼 때, 포연도 배신도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극도의 피로와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억울함이 서러운 홍수가 되어 순식간에 콧등을 타고 올라왔다. 시야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흐려졌고 눈가에는 뜨거운 용암이 타오르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질끈 감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육체의 고통으로 곧 터져 나올 연약한 눈물을 막으려 애썼다.
「선생님은…… 당연히 거절하셔도 좋아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결국 속눈썹의 구속을 떨쳐내고 나의 손등 위로 떨어져 슬픈 수화로 부서졌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벼랑 끝에 서서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방금 있었던…… 그런 일로 당신을 협박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언젠가…… 저 키리후지 나기사의 계산이 결국 빗나가고, 트리니티 하늘을 가르는 벼락에 맞아 추락해 정치적 폭풍의 무정한 소용돌이에 완전히 집어삼켜질 때…… 그때…… 제발 적어도 기억해 주세요. 예전에 키리후지 나기사라는 어린 소녀가 햇살이 비치는 이 방에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당신에게 가장 절망적인 도움을 청했었다는 것을……」
나의 말은 채 끝나지 않았다.
그 '청'이라는 글자의 꼬리표가 목구멍에 걸려 흐느낌으로 변할 때,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이어서 눈앞에 넓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눈물로 범벅된 두 눈을 채 뜨기도 전에, 강하고 뜨거우며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차가운 상석에 앉아 있던 나를 끌어 올렸다. 나는 넓고 견고한 가슴 속으로 부딪히듯 안겼다.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코롱 향과 성인 남성의 호르몬이 섞인 그 냄새가 순식간에 나를 완전히 감싸 안았다.
그는 나의 정치적 청사진에 화려한 수식어로 답하지 않았고, 나의 무거운 거시 전략들을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는 방금 나의 피부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던 굳은살 박인 커다란 두 손을 뻗어, 한 손으로는 떨리는 나의 허리를 꽉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의 뒷머리를 다정하면서도 확고하게 누르며 눈물로 얼룩진 나의 엉망진창인 얼굴을 그의 따뜻한 품속 깊숙이 묻어버렸다.
이 애틋하고 절대적인 안전함이 느껴지는 포옹 속에서 나의 모든 위장, 모든 공포, 미래에 대한 모든 끔찍한 가설들이 이 순간 철저히 녹아내렸다.
나는 그의 따뜻한 품속에 단단히 갇힌 채, 코끝을 그의 은은한 코롱 향과 미세한 땀 냄새가 섞인 셔츠 깃에 깊이 묻었다. 얇은 면직물 너머로 그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차분하고 힘 있는 심장 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두근, 두근'. 그 진동 하나하나가 다정한 해머가 되어 나의 지친 영혼을 세차게 두드렸다.
나는 아직 교환 조건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이 잔혹한 정치 세계에서 모든 선사품은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나는 원래 머릿속으로 수많은 타협안을 구상해 두었고, 학원의 일부 이익을 양보하고 티파티의 비자금을 동원해 트리니티의 치명적인 위기들을 해결해 줄 그의 도움을 사려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칩이 테이블 위에 오르기도 전에 선생님은 이 망설임 없는 포옹으로 나의 제멋대로인 방대한 요구를 수락해 버렸다.
그는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지?"라고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나를 안아주었을 뿐이다.
나에 대한 이 아무런 조건 없는, 모든 이익 계산이 배제된 절대적인 신뢰는 갑작스러운 봄비처럼 이미 위태롭던 나의 심리적 방어선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나는 원래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으나, 이 묵직한 안전함을 확인한 뒤에는 더 이상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다. 길을 잃었다가 마침내 보호자를 찾은 어린아이처럼 나는 그의 등 뒤 옷감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나는 입을 벌리고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의 품에서 목놓아 울었다. 뜨거운 눈물과 억눌렸던 흐느낌이 뒤섞여 그의 가슴팍 옷감을 넓고 진하게 적셔 나갔다. 따뜻하고 끈적하게.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가슴 속에 쌓여있던 수개월 간의 공포와 피로를 모조리 쏟아내고 나서야 격렬하게 떨리던 어깨가 점차 진정되었다. 공기 중에는 완전히 식어버린 홍차의 쌉싸름한 냄새와 햇살에 구워진 카펫의 건조한 향기가 감돌았다. 나는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내며 반 걸음 물러났다. 눈은 여전히 붉게 부어올랐고 긴 속눈썹에는 수정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키리후지 나기사'라는 영혼이 이 포옹 속에서 일종의 열반을 완성했음을.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서늘한 공기가 기도를 타고 폐부로 흘러들어 잔류하던 떨림을 씻어내 주었다. 나는 손을 들어 엄지로 눈가의 눈물자국을 가볍게 닦아낸 뒤 몸을 돌려, 여전히 조금은 후들거리지만 이미 우아함을 회복한 발걸음으로 티파티실의 거대한 야외 테라스로 걸어 나갔다.
나는 손가락 끝을 뻗어 오후의 햇살에 미지근하게 달궈진 난간을 살짝 만졌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중앙 행정 구역의 웅장한 순백 건축물 아래로 숙연함과 영광이 공존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선생님, 이쪽으로 와서 보세요.」
가볍게 불렀다.
차분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그가 나의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우리는 아래의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티파티 직속 위수 부대의 포병 진지였다. 햇살의 굴절 아래 일렬로 늘어선 중형 화포의 검은 금속 포신들이 차갑고도 치명적인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단정한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엄격한 훈련을 수행 중이었고, 거리가 있음에도 규칙적인 군화 소리와 기계 장전의 선명한 금속 마찰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녀들은 트리니티의 축제 등 주요 행사 때 가장 위풍당당한 의장대예요.」
나의 시선은 차가운 전쟁 병기들을 훑고 지나갔고, 목소리는 방금 전의 연약함에서 벗어나 상위자 특유의 쇳소리가 섞인 강인함으로 변모했다.
「동시에 그녀들은 중앙 행정 구역이 파멸적인 침공을 당했을 때 가장 난공불락인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하죠.」
고개를 돌려 다시 날카롭고 밝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로 선생님의 옆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만약 언젠가 선생님이 극복하기 힘든 고난을 마주해 가시덩굴을 자를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시다면……」
그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실어 생애 가장 무거운 약속을 내뱉었다.
「저 키리후지 나기사, 그리고 제 뒤에 있는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결코 얕볼 수 없는 무장 실력과 정치적 저력은 망설임 없이 당신의 가장 강력한 후원이 되어 예리한 칼과 견고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이것은 한 거대 국가의 국운을 나의 심신과 함께 이 남자에게 아무런 보류 없이 전부 걸어버린 거대한 도박이었다.
산들바람이 창문 틈으로 불어 들어와 나의 회금색 장발을 흩뜨렸고, 머리카락이 나의 긴 목덜미를 가볍게 스쳤다. 그에게 조금 더 다가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다정과 공명을 담아 속삭였다.
「당신의 이상을 알고 있어요, 선생님. 당신은 그 어떤 학원도 편애하지 않으며 키보토스 모든 학생의 운명을 하나로 잇고 싶어 하시죠. 당신의 다정한 마음은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모든 아이가 구원받고 햇살 아래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고 있어요.」
고개를 살짝 들자 입가에는 야심과 애정이 뒤섞인 눈부신 미소가 걸렸다. 마치 그에게 온 세상을 바치는 듯한 모습으로.
「당신이 창조하려는 그 기적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장애물과 의구심에 직면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트리니티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다면, 그리고 제가 이 정치적 체스판 위에서 당신을 위해 길을 닦아드린다면…… 당신이 주도하는 그 모든 아이를 구원하는 프로젝트들은 가장 완벽하고 강력한 성공 보증 수표를 얻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깊은 눈동자 속에서 무거운 정치적 칩에 대한 저울질이나 경계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트리니티 전체를, 아니 나의 모든 죄악과 야심까지도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대양만이 보일 뿐이었다.
창밖에서는 미풍이 불어와 반쯤 열린 조각 창틀이 가벼운 '끼익' 소리를 냈다. 멀리 종탑에서는 때맞춰 오후 3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깊고 그윽하며 신성한 종소리가 유리를 뚫고 들어와 아래 위수 부대의 기계 장전 소리와 뒤섞이며 넓은 티파티실 돔 아래에 오랫동안 메아리쳤다.
이 장엄한 종소리와 눈부신 금빛 햇살 속에서 나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전례 없는, 마치 구원받은 듯한 평온함을 느꼈다.
그렇다. 햇살에 의해 밝음과 어둠으로 나뉜 이 방 안에서, 여전히 얼룩진 찻물 자국과 애매한 수흔이 남은 이 회의용 테이블 옆에서, 우리는 이미 모든 교환을 마쳤다.
이익적으로는——트리니티의 소름 끼치는 포병 매트릭스와 방대한 자금력, 그리고 심연처럼 깊은 정치적 저력이 이제부터 그가 밀어붙이는 '구원'의 대의를 위한 가장 예리한 창이 될 것이며, 그가 가진 모든 학원을 초월하는 초연한 위망과 조율 수완은 트리니티의 경제적 궤양과 국경의 균열을 꿰매줄 가장 견고한 실이 되었다;
위치상으로는——저 높고 고독하며 냉혹했던 '티파티 호스트'와 신단 위에 모셔진 채 사방을 분주히 누비던 '완벽한 스승'은 모두 죽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드디어 살을 맞대고 진흙탕과 권력 속에서 나란히 선 두 명의 공모자였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나는 계산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고 공포 때문에 늘 긴장해 있던 마음을 바쳤고, 그는 나의 나약함과 죄악, 그리고 뒤틀렸지만 극한에 달한 나의 사랑을 아무런 유보 없이 받아들였다.
종소리의 여운이 서서히 사라지고 공기 중에는 우리 두 사람의 교차하는 숨소리만이 평온하고 길게 남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마치 마음이 통한 듯 동시에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후의 햇살은 금색 휘장처럼 우리의 손가락 끝을 다정하게 감싸 안았다. 나는 눈꺼풀을 내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그 커다란 손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은 넓고 손가락 마디는 뚜렷했으며, 손끝에는 오랜 세월 펜을 쥐고 분주히 움직인 흔적인 거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손은 나에게 존경스러운 '은인'이자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스승'의 것이었으며, 거리와 예절, 그리고 감히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금기를 상징했다.
반면 나의 손은 가늘고 창백하며 부드러웠다. 정교한 본차이나 찻잔을 드는 데만 익숙했고, 냉혹한 정치 명령서에 서명하며 고독한 밤이면 스커트 자락을 꽉 쥐어짜던 이 두 손은 이제 모든 방어 기제를 해제한 채 미세한 떨림과 앞뒤 가리지 않는 결연함을 담아 마주 나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의미가 완전히 달랐던 그 두 손이 꽉 맞잡혔다.
살결이 맞닿는 순간 거침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기묘한 촉감이 전류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손바닥은 내 것보다 훨씬 온도가 높았고, 그 뜨거운 힘은 맞닿은 손바닥을 통해 끊임없이 전해져 나의 손끝에 남은 마지막 한기까지 깨끗이 몰아냈다. 나는 평소처럼 예의상 가볍게 쥐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탐욕스럽게 다섯 손가락을 벌려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깊숙이, 죽어라 깍지를 끼어 맞잡았다.
그의 손가락 끝 굳은살이 나의 예민한 손가락 사이를 문지르는 것을 느꼈고, 그의 강인한 맥박이 피부를 통해 나의 심장 소리와 점차 동기화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단순히 연인 간의 손잡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피와 영혼으로 맺어진, 영원히 배신하지 않을 고대의 서약과도 같았다.
트리니티 권력의 가장 정점에서, 수십만 학생들의 머리 위에서 우리는 열 손가락을 꽉 맞물렸다. 햇살은 겹쳐진 우리의 두 손에 신성한 금빛 광채를 덧씌웠고, 우리 뒤편 카펫 위에 드리워진 하나로 섞인 거대한 그림자는 이제 다시는 갈라놓을 수 없는 한 몸이 된 듯 보였다.
작가의 말 : 티타임 중에 일어난 이야기.
한 단락을 완성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개연성이 있나?"
그러다 보니 블루 아카이브 원작의 이곳저곳 구멍 난 설정들을 메워야 했고......
결국 세계관의 거대한 구멍들과 공식의 딱딱한 서사들을 어느 정도 다듬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정도면 세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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