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블루아카 소설 (Pixiv)/단편

이오리 "이제 못 도망쳐, 선생님"

무작 2025. 5. 19. 18:00

작품 링크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4772028

 

작가 : 四阿ゆきち


작가의 말 : 끈적한 이오리가 보고 싶습니다


이오리 "이제 못 도망쳐, 선생님"

 

오랜만에 샬레 근무.
나는 샬레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하아. 오늘은 또 어떤 성희롱을 해댈까, 그 바보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꼬리는 분주하게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진정해, 나. 딱히 기대하는 거라든가…… 그런 거 아니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타일러 문을 기세 좋게 열었다.

"어ー이, 선생님! 왔어!"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모습을 찾게 된다.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주위를 둘러보니, 늘 있던 곳에서 서류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쨌든 이렇게 일하는 모습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안녕, 이오리. 잘 부탁해"

……어라?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 작은 위화감이 싹텄다.


(……왠지, 너무 평범하지 않아?)

평소 같으면,
"기다렸어 이오리"라고 말하며 발을 만지거나
"오늘도 귀여운 트윈테일이네"라든가,
"밟아줘도 괜찮을까?"라든가.
만나자마자 기분 나쁜 대사를 당연하다는 듯 날려대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


인사만. 내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담담하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듯하면서도 마치 어딘가 '벽'이 있는 듯한 태도.

(……농담이겠지? 뭐야? 오늘은 '정상적인 선생님 놀이'라도 하는 건가?)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책상에 앉아 선생님은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그 등에서 나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문득, 선생님이 시선을 피하고 있는 것처럼까지 느껴져——가슴이 콕콕 찔렀다.

(……무슨 장난인가?)

아주 조금,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변태의 태도를 그리워하다니, 나 자신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저었다. 강하게, 붕붕.
마음속 무언가를, 지워버리려는 듯이.

"……뭐, 뭐 좋아. 빨리 끝내버릴까"

조용한 실내에, 키보드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그것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아니, 별로. 오늘은 그냥 진지한 날인 거겠지)

(하지만, 나랑 단둘이 있을 때 이렇게 조용한 선생님이라니…… 지금까지 있었나?)

(서류가 정리되면, 다시 평소처럼 얽혀올 거야. 그 바보는,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이, 서서히 차가워진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묘하게——불안했다.

——슬슬, 뭔가 말할 때가 되지 않았나?


"……슬슬"

"오!"

봐라, 나랑 둘이 있는데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쉴까"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그 울림이 전혀 다르게 들렸다.

"……응. 그래"

목소리가 떨릴 뻔한 것을 억누르며 대답한다.
이 위화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테이블에 떨어뜨렸다.

(……이상하잖아. 왜 오늘은, 한 번도 얽혀오지 않는 거야……)

평소 같으면, 제일 먼저 발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냄새'가 어떻다든가, '발의 윤기'가 어떻다든가, 의미 불명한 말을 해댈 텐데.

그것이 없는 지금, 이렇게나——텅 빈 것처럼 느껴지다니.

가슴속 깊은 곳이, 서서히 차가워지는 감각.
나는 그 이유를 아직 깨닫지 못했다.

'평소대로'가 아닌 것이,
이렇게나 불편할 줄이야——.



보고서를 전부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샬레 책상 위에 있는 서류 더미는 거의 줄지 않았다.
마치 눈사태를 기다리는 것처럼, 불안정하게 쌓여 있었다.

(정말, 얼마나 쌓아둔 거야……)

"쉴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은 후 나는 그 발로, 샬레 복도에 있는 자판기로 향했다.
이 정도의 배려는 풍기위원 부위원장으로서 당연한 임무다.
딱히 선생님을 특별 대우하는 건 아니다.
응, 아니야.

카앙, 하고 음료가 떨어지는 소리.
무의식중에, 선택한 것은 선생님이 늘 마시는 것이었다.
몇 번 게헨나에 와줬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자연스럽게 손이 뻗어 있었다.

(……윽. 딱히 특별 대우가 아니라고 이 정도는)

그대로 근처 소파에 앉는다.
에어컨이 켜져 있을 텐데, 왜인지 몸이 조금 열을 띠고 있었다.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나는 문득, 내 발밑을 보았다.

깨닫고 보니——손가락 끝이, 치마 자락을 겨우 몇 센티,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양말 위치도, 아주 조금만 무릎 아래로 내렸다.
덤으로, 흐트러진 트윈테일을 정리하는 척하며, 깃 사이에 바람을 통하게 했다.

……내가 뭐 하는 거야.

"조금 더웠을 뿐이고. 다른 의미는…… 없어, 없어 없어 없어……!"

입술을 삐죽이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그 반응이야말로 동요의 반증이라는 것을 나 자신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혹시.
이 모습을 보면, 선생님이 평소처럼 가벼운 농담이라도 던져주지 않을까.
시시한 농담이든, 어처구니없는 성희롱이든, 뭐든 좋다.
'평소의 선생님다운' 일을, 해주지 않을까 하고.

(……바보 같네, 나)

아주 작은 기대를 품고, 음료를 손에 들고 샬레로 돌아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왜인지 쓸데없이 신중했다.



과감하게 조금만 길이를 조절한 치마와, 평소보다 짧은 양말.
그것들을 입은 나는, 음료를 손에 들고 샬레로 돌아왔다.

(——뭐, 딱히. 뭔가 말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는 안 한다. 안 하지만.
한 마디 정도, 뭔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그 옅은 희망은, 허무하게 배신당했다.

고요한 실내에, 다시 키보드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선생님은 '쉴까'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와 변함없는 자세로 묵묵히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이 자리에 없는 것처럼.

나는 살며시 선생님의 등 뒤에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다.


(……뭐야, 이거)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조금만 심술궂은 복수를 해주기로 했다.

"……자, 선생님"

의자 등받이를 홱 잡고, 나 쪽으로 돌린다.
일부러 당당하게. 자연스럽게.

"너무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아코 쨩도 항상 말하고 있다고. 자, 이거 마시고 좀 쉬어"

건네준 것은, 선생님이 늘 마시는 캔커피.
고른 이유 같은 건…… 딱히, 없다.

선생님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과 당혹감은, 착각이 아니었다.

"아, 아아…… 이오리, 고마워"

그대로 커피를 한 번 보고——
선생님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화면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것뿐.


그 이상, 아무것도.


(…………하?)

(평소 같으면, "왜 내가 좋아하는 거 아는 거야!?"라든가, "이오리랑 나는 상사상애(相思相愛)네!"라든가, 기분 나쁜 말 하잖아……)

닿았던 손가락 끝의 감촉만이, 손바닥에 열을 남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없었던 일'처럼 흘려보낸 것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가슴속 깊은 곳이, 서서히 차가워진다.
그래도, 억지로 스스로에게 타일른다.

(……뭐야, 정말)

시선을 피할 때마다, 내 마음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감각이, 조금씩, 확실하게, 가슴에 스며든다.


아주 조금——아주 조금, 기대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저, 시선을 돌린 채 소파에 앉았다.



샬레의 공기는 변함없이 조용했고,
키보드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이상해. 절대로, 오늘의 선생님은 이상해)

선생님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 정도는, 함께한 시간으로 안다.

하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거리도 좁히지 않고,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이것이 평범한 태도라고, 생각할 리가 없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거슬리는 듯한 불안감이, 서서히 퍼져나간다.

(……흐음. 선생님이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끝까지 해보자고.
이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끝내버릴 수 없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저기, 선생님"

일부러 가볍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부른다.

"이쪽, 잘 모르겠으니 가르쳐줬으면 하는데"

책상에 놓인 서류 한 장을 가리키며, 손짓한다.
선생님이 얼굴을 들었다.

"아, 그럼 내가 해둘 테니, 그건 나중에 해도 괜찮아"

(으음……)

잠시, 말이 막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끝내고 싶어"

선생님이 뭔가 말하려 하기 전에, 나는 반 걸음 내딛고——

"됐으니까, 이리 오라고!"

홱, 선생님의 팔을 잡고 당긴다.
손가락 끝이 선생님의 소매에 얽히는 순간, 묘한 감촉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부드러운데, 멀다.
선생님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말보다 훨씬 가슴에 박혔다.


(……뭐야)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나도 모르게, 물어뜯고 싶을 정도의 위화감.
선생님의 팔을 잡는 힘이, 조금 더 강해졌다.
선생님의 곤란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나는 팔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이렇게 끈적하게 어리광 부리는 것은 나답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겨우 끌어당긴 이 거리를, 또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 두려웠다.

여기서 놓으면, 분명 다시——원래대로 돌아가버릴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척'의, 그 거리로.

"그럼…… 여, 여기는 어떻게 하는 거야?"

나 자신도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잠시 한숨을 쉰 후 대답해 주었다.

"여기는 말이지…… 먼저 이 항목을 입력하고……"

평소와 변함없는,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 기쁘게 느껴졌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아까까지의 답답함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이거야. 이게 우리잖아……)

——그대로,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이 거리에서 있게 해줘.
선생님의 설명이 거의 끝났을 때였다.

"그럼, 나는 슬슬……"

돌아간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올 것 같았다.

"기, 기다려! 여, 여기도……!"

갑자기,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무의식중에——
팔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선생님에게 밀어붙였다.
가슴이, 선생님의 어깨에 가볍게 닿을 정도의 거리.
피부가 딱 붙는 그 온도에, 나 자신도 숨을 삼킨다.

(……너무 나갔어. 너무 나갔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선생님이 '멀리' 가버리는 것보다는,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부탁이야, 지금만……)



"잠깐, 이오리. ……떨어져"

그 말과 동시에, 선생님의 손이 나의 어깨를 살며시 밀어냈다.
휙, 아무 망설임 없이.
아주 작은 힘이었는데, 심장을 꿰뚫린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에……?"

귀에 들린 것은, 상냥하지만, 결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목소리.

"미안해 이오리. 몸이…… 여러 군데 닿고 있어서……"

"……별로, 그런 거 좋지 않아?"

그 말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나 심장이 뛰었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

(왜, 그렇게……)

(하지만…… 하지만, 당신——)

——내 졸업 앨범, 굳이 찾아낼 정도였잖아.
——발을 핥아놓고, 왜 이제 와서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거야.

선생님은, 나에게만 다른 학생들과 다른 행동을 해주고 있었다.
그게 전부, 당신의 '변덕'이었다는 거야?


아니면, 그냥 유희였던 거야?


"이오리,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일찍 퇴근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상냥함이, 지금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걱정하는 목소리일 텐데——
마치 "너는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가슴이 조여온다.

눈앞의 선생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울 것 같다는 생각은, 절대 들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샬레를 뛰쳐나왔다.

(뭐야…… 선생님, 바보……)

(……변태……)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진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할 때마다, 가슴이 점점 괴로워지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나는 이때,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아아, 나, 진심으로 선생님이——



선생님과 거리가 멀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연락도, 지시도, 목소리도, 모습도——
선도부에 온다는 이야기조차, 뚝 끊겼다.

물론 업무는 제대로 처리하고 있다. 대충 하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지만.

(……왜 이렇게, 할 맛이 안 나지)

서류 뭉치를 아무렇게나 묶으면서, 나는 혼잣말을 한다.
등 뒤에서 놀리는 것도, 갑자기 어깨를 주무르는 성희롱도, 없다.

……그렇게 싫어했던 주제에.
없어지니까, 왜, 이렇게 외로운 거야……。

그런 어느 날, 아코 쨩의 입에서 문득 새어 나온 말에, 심장이 뛰었다.

"내일, 선생님이 도와주러 오신대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잊을 수 없는 광경이 플래시백된다.

——"이오리, 떨어져"
——"……그런 거 좋지 않아?"

(……또, 거절당하면……)

갑자기, 손끝이 차가워진다.
하지만 이런 감정, 나답지 않다. 나는 나답지 않은 것이 제일 싫다.

(저런 건…… 뭔가 잘못된 거겠지. 평소의,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 ……그래, 분명 그럴 거야)

그래서 나는, 웃고 있었다.
평소처럼 가장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선생님을 맞이했다.



"안녕, 모두들"

그리운 목소리가 돌아온다.
그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 희미한 안도감이 퍼진다.

——선생님은, 변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역시 잘못된 거였어. 그날뿐이었어.

그렇게 생각한,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선생님, 여기 사양 변경 말인데요~"

"역시~! 선생님, 알고 계시는군요~!"

풍기위원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선생님.
내 눈앞에서, 꺄르륵 웃고 있다.

아주 조금,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왜, 저렇게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거야)

(내 앞에서는, 그렇게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면서……)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슴 안쪽에, 검은 얼룩이 퍼져나가는 듯한 감각.


——왜 내가 아니라, 저 애들이야.


"선생님, 순찰 도와줘. 선생님 아니면 안 되는 일이야"

갑자기 팔을 당겨진 선생님이 돌아보자, 나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에, 하지만 지금 여기 정리가——"

"됐으니까. 내가 말하는 거니까 와줘"

명령조. 그건 이미, 업무 명령의 얼굴.

(선생님을 아무에게도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아)
(나만이, 특별하고 싶어)

그 마음을, 나는 이미——



다른 날.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흘긋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날카롭게 중얼거렸다.

"또 음흉한 눈으로…… 풍기가 문란해지잖아"

선생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친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 즉시 시선을 돌린다.

그것으로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하지만 근본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선생님, 나만 봐줘.
——다른 아이들에게, 손대지 마.


내 마음은, 이미 한계였다.



"선생님, 또 다른 건으로 게헨나 학생과 회의 잡혔다고요?"

복도 그림자에서, 그 말이 들린 순간, 이오리의 발이 멈췄다.

(……또. 다른 아이와. 나 말고……)

입술을 깨문다.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소매를 쥐고 있었다.


이제 한계였다.


이오리는 그대로 기세 좋게 샬레로 향했다.
선생님이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노려, 문을 활짝 열었다.

"선생님……!"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조여왔다.

늘 똑같은, 상냥한 얼굴.
조금 당황한 듯한...
하지만, 나에게 향한 것이 아닌 것 같아, 무서웠다.

"무, 무슨 일이야, 이오리?"

그렇게 물어본 순간, 무언가가 무너져내렸다.

"……왜,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거야"

"응?"

"전에는, 매일 귀찮을 정도로 신경 써줬으면서…… 지금은, 다가가면 도망치듯 피하고……"

"이오리, 그건——"

"나, 싫어진 거야……?"

선생님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이오리는 한 걸음, 두 걸음 거리를 좁혔다.

"나, 전에는…… '특별'했던 거 아니었어?"

눈앞의 선생님의 표정이 흐려진다.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이오리를 묶어놓았다.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 해준다면, 내가 할 거야"

그 말과 동시에, 이오리는 선생님을 밀어 넘어뜨렸다.

작은 몸이, 큰 몸을 바닥에 밀어붙이기에는 충분한 기세였다.
무엇보다——마음의 무게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있잖아, 또 거절할 거야? 아니면 이번에는, 나를, 제대로 봐줄 거야?"

떨면서, 이오리는 선생님에게 매달렸다.
그 눈에는, 눈물이 번져 있었다.

"부탁이야…… 더 이상, 선생님이 피하는 거, 견딜 수 없어……"

——그 목소리에, 선생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오리의 체중은 가볍다.
하지만, 그 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박힌다.
선생님은 그저 침묵한 채, 이오리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이오리…… 미안해"

작게, 숨을 내쉬듯 새어 나온 그 목소리에, 이오리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나, 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

"……에?"

"전에…… 게헨나 아이가 말했어. '이오리가 진심으로 화났대, 신고하려고 한대'라고. 다음에 이상한 짓 하면, 이제 끝이라고——"

선생님의 말에, 이오리의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그래서, 그만두자고 생각했어. 이제, 이오리를 곤란하게 하지 않도록 하자고……"

"……뭐야, 그게"

이오리는 부들부들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이어간다.

"그거, 전부…… 전부, 다른 애가 멋대로 말한 거잖아……?"

"진심으로 싫었으면, 나는 여기에 오지 않았어!"

"계속, 선생님이 신경 써주는 거, 기대하고 있었는데……"

"……왜, 혼자서 단정하고…… 나에게서 멀어진 거야……"

뚝뚝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선생님은 비로소, 그 몸을 안아주었다.
지금까지 계속 긴장하고 있던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지는 것을 알았다.

"이오리…… 네가 가장 소중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할 수 없었어"

"너만, 특별했어…… 그래서, 무서웠어"

"이오리에게…… 미움받는 것이, 정말……"

그 말에, 이오리가 얼굴을 든다.
붉어진 눈으로, 똑바로 선생님을 보았다.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이오리의 팔이 목에 꽉 감긴다.

"그럼, 용서해줄게. 변태"

"하지만, 다음부터는…… 제대로 나를 봐. 내가 싫어하기 전에, 제대로, 나에게 물어보라고"


"……그리고, 제대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줘……"


귀까지 새빨개지면서, 이오리는 얼굴을 돌렸다.
그럼에도, 그 팔의 힘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도, 더 이상 그녀를 거부할 이유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있지, 선생님"

힘껏 양손을 짚은 채, 나는 선생님의 가슴 위에 올라탄 채 묻는다.

"아까부터…… 왜 안 일어나는 거야?"

선생님의 얼굴에, 희미하게 곤란한 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아니…… 이오리가, 위에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에, 뭐라고?"

"……힘이…… 부족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내 양손을 내려다본다.
선생님의 손바닥을——나는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하지만 확실하게 누르고 있었다.
꾹, 아주 조금만 체중을 실어서.

"……헤에, 선생님"

나는 씨익 웃으며, 일부러 심술궂게 말한다.

"나를 밀어봐. 간단하잖아?"

선생님은 미간에 주름을 잡고, 얼굴에 힘을 준다.
하지만 그 몸은,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는다.

"……저, 이오리. 이것도…… 진심으로…… 하고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가슴속 깊은 곳이 꽉 조여왔다.


"아핫……"

뭐야 그거, 그 말하는 방식 뭐야.
그런데——왜일까, 이렇게나 기쁘다.

"헤에…… 그렇구나……"

나는 시선을 내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선생님은, 나한테 힘으로는 못 당하네……♡"

아아, 이 느낌 뭐야.
선생님의 심장 박동이, 내 다리 아래에서 전해져 온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다. 내 한 마디로, 내 손으로——선생님은, 어떻게 할 수 없다.
단지 그것만으로, 짜릿할 정도로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선생님의 눈이, 제대로——지금, 나를 보고 있다.

"그럼 있지, 선생님"


"이제부터는, 억지로 나에게서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겠네?"


싱긋 웃으며 말하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숨을 삼켰다.



——드디어, 따라잡았다.

마음도 몸도, 전부.

이 거리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선생님에게도 이해시켜 줄 것이다.

선생님의 뺨에, 살며시 손가락을 댄다.

이미 내 위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 얼굴은, 지금 막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했지만, 이미 말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 말이야"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리고, 한숨을 섞듯이,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나에게…… 이렇게 외로운 마음 들게 했으니까"

"책임, 져야겠지?"

선생님이 미미하게 숨을 삼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다.

"선생님, 항상 내 발…… 핥고 싶다고 했었지?"

움찔 떨리는 반응에, 나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오늘만큼은——좋아하는 만큼, 맛보게 해줄게"

"몇 번이고 말할 테니까. ……선생님은 이제, 내 거야♡"

불안함도, 질투도, 외로움도.

전부 전부, 내 안에서 하나가 되어——

지금 이 순간, 비로소 선생님을 '손에 넣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는다.

이 입술도, 손도, 마음도.

선생님의 전부가, 앞으로도 나만의 것.


나는 살며시 눈을 감고, 열기를 머금은 시선을 선생님에게 떨어뜨린다.

"……각오해, 선생님"

"이제 못 도망쳐"

——샬레 문이, 조용히 닫힌다.

그 너머에 이어지는 것은, 단둘만의, 비밀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