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카 소설 (Pixiv 이외)/[샬레 활동 비망록]

막간Ⅰ — 당신을 믿어요

무작 2025. 9. 13. 15:00

작품 링크 : https://syosetu.org/novel/302033/11.html

 

이전화 : https://qjsdur00.tistory.com/555


# 샬레 활동 비망록

# 당신을 믿어요


그 후, 선생과 아츠코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그저 비 오는 길거리에 둘이 서서 밤을 보낼 뿐이었다.
비가 그쳤을 무렵, 선생이 아츠코에게 말을 걸려다――그녀가 선잠이 든 것을 깨달았다. 코트 소매를 잡고 그의 팔에 기대어 축 늘어진 채로.
기분 좋은 듯이 편안하게 잠든 그녀를 깨울 마음은 들지 않아, 가능한 한 진동이 전해지지 않게끔 등에 업고 샬레까지 데려다주고서 욕실을 준비하려는데…… 그녀가 잠에서 깼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루벨라이트처럼 예쁜 눈을 몇 번 깜빡이면서.

「미안해, 선생님」
「신경 쓰지 마. 밤도 늦었고, 졸릴 수밖에 없지…… 이제 목욕해도 돼」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
「아츠코」

그 이상은 안 돼, 라고 말하듯이 선생은 아츠코의 입술 앞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혀를 조금이라도 내밀거나 입술을 조금이라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아츠코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알아?」

사과의 말을 할 때가 아니라, 다른 더 적절한 말이 있을 것이라고――선생은 말했다.

「응. 고마워, 선생님」
「천만에. 자,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빨리 다녀와. 갈아입을 옷은 비품으로 목욕 가운이 있을 테니까 그걸 쓰고. 지금 입은 건 세탁실에 넣어두면 돼…… 아아, 욕실 위치는――」
「선생님은 같이 안 들어가?」

선생은 굳어버렸다. 그러다 동시에 납득하고는 감개무량해졌다. 아아, 아츠코는 이런 아이였지――라고.

「여러모로 문제만 생길 테고, 같이 안 들어갈 것 같아……」


그 말을 했을 때, 아마 얼굴이 약간 굳어 있었겠지, 하고 선생은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목욕 가운 입는 걸 도와주고, 젖은 머리를 말려줬다. 둘 다 아츠코 스스로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선생에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단순히 그와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오전 2시가 넘자 그녀는 다시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었고, 그 틈에서 현실로 나가지 못하도록 그는 살며시 그녀를 안아들고――선생의 가벼운 잠자리를 향했다.


현재 아츠코는 침대에서 잠들어 있다. 잠결은 일정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있다.
백자 같은 피부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보랏빛 머리카락.
정말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 같았다.
손대기조차 망설여지는 완벽한 예술품.

선생은 그런 그녀가 자고 있는 침대 한구석에 앉아 있다. 그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아츠코의 손에 쥐여 있었기 때문이다. 애달프게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풀고 싶지 않아…… 이렇게 그녀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새벽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건 오랜만이라고 선생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생각할 것도 없는 시간은 더없이 귀중하다.

스마트폰도 PC도 없다. 태블릿은 있지만, 안에 있는 아로나는 아마 잠들어 있을 것이다. 시간을 때울 책도 없다.


고로 선생은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었다. 평소처럼 넘쳐나는 정보가 없다.
있는 것은 손끝에서 전해지는 아츠코의 온도와 그녀의 숨소리.
그것은 어딘가 속세와 동떨어져 있고 투명했다.
손끝의 온도에서 눈을 돌리면 자신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끝과 시작이 가까웠다.


「…………」

선생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잡념을 쫓아내듯이. 그리고는 문득 자조 섞인 듯 중얼거렸다.


「마치죽은 전사(에인헤랴르)잖아……」


너무 많은 죽음을 겪은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있으면 세상에 녹아드는 감각을 맛본다. 허무주의적인, 달콤한 독.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는 죽음의 세계. 이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죽음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실은 절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어제의 산책도 마음 한구석에서 죽을 곳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아츠코를 만나지 못했다면, 비틀거리며 바다로 가서…… 몸을 던졌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자살 충동. 생각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뒤를 돌아보면 구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애원하는 손이 있는 것 같고, 멸망한 세계의 잔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것들은 환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이며, 그가 그인 이상 짊어져야 할 죄와 벌이다. 그것들을 품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한 번 눈을 감았다가――그리고는 눈을 뜬다.
휘몰아치던 자기부정과 파멸 욕구는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온도, 숨소리, 심장의 고동…… 모든 것이 전해진다.

더는 혼자가 아니다.
그것에 안도감을 느끼고――밤과 고독의 잔재를 삼켰다.
언젠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 될 조각들을.


「……정말, 어쩔 수 없네」

조소를 다분히 담은 말의 영을 중얼거리며 왼손으로 앞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문득 창밖을 보니,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5시 반이 넘어, 새벽이 밝아왔다.
아츠코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일어서려는데――.


「으음…… 선, 생님……?」

방울 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몸을 일으키려는 아츠코가 있었고――그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더 자도 돼……자아, 잘 자. 좋은 꿈 꿔(깊이 잠들어 편히 쉬렴)」

선생이 기묘한 기동 영창(랭귀지)을 중얼거리며 왼손으로 아츠코의 눈꺼풀을 살며시 감겨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새근새근, 일정한 리듬을 새기며.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15세 소녀……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그것은 독이다. 그러니 샬레에 있을 때만큼은 푹 쉬었으면 한다. 이곳에는 너를 위협하는 악의도, 너를 상처 입히는 적의도 없으니까.



「라고는 해도,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오만할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것이고, 선택의 자유는 그녀에게 있다. 그녀의 마음을 정하는 것은 선생이 아니다.

선생에게 허락된 행위는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의견을 말하고, 등을 밀어주고――언제나 그녀의 편으로 존재하며 곁을 지키는 것뿐.

그녀를 제멋대로 불쌍하다고 여겨 베푸는 것은 그가 가진 어른의 미학에 반한다. 설령 근본에 선의가 있더라도 타인의 마음을 짓밟거나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악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베아트리체보다 추악한 어른으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

――그녀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믿어주지 못하고서 무슨 어른인가. 무슨 선생인가.


그는 아츠코에게서 멀리 떨어진 오른손으로, 살며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젠가 그녀가 쥐는 것이 총이 아니라――가슴 가득히 안고 넘칠 만큼의 꽃다발이 되기를 빌며.

그는 방을 나섰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아니에요, 유우카 님……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선생은 정좌한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유우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든 엎드려 빌 준비가 된 훌륭한 상태였지만, 등 뒤에 검붉은 오라 같은 것이 보이는 유우카는 당장에라도 할복을 명할 기세였다. 정말 무서웠다.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유우카와 선생이 일하고 있는 방으로 아츠코가 찾아온 것이다. 물론 목욕 가운 차림으로. 게다가 약간은 옷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선생을 바라보며 요염하게 미소 짓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건 후의 모습이었다.
그런 아츠코를 본 순간, 유우카는 선생의 시야를 양손으로 가리고, 세탁해둔 그녀의 옷으로 갈아입힌 후……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가 올 리 없잖아요! 제가 돌아간 후에 뭐 하셨어요!? 꾀어냈어요!?」

변명의 여지 없는 정론이었다.

「선생님, 나 귀여워?」
「물론이지. 아츠코는 귀엽고, 예뻐」

정좌하고 있는 선생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츠코에게 미소 지어주자…… 정면의 유우카 얼굴에 핏대가 섰다.

「선생님? 제 앞에서 꼬드길 정도로 간이 부었나 보네요?」
「네, 죄송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생은 즉시 엎드려 빌었다.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절묘한 자세였다.
백귀야행의 면면들에게 단련된 좋은 자세를 활용한 것이었지만, 유우카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왜 샬레의 가벼운 잠자리에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어요?」
「말하는 데 악의가 있는 거 아니야!?」

표현이 심하지만,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었을 거라고 선생은 생각했지만――슬프게도 선생은 유우카에게 거역할 수 없다. 완전히 잡혀 살고 있었다. 옆에서 보면 완전히 부부 만담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아츠코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침대에서 재워준 것에 대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라고――.


「선생님, 고마워. 같이 자줘서」

줄곧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그녀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유우카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하?」


유우카가 쥐고 있던 펜이 으스러지며 두 동강 났다. 마치 선생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그것에 합장하며, '아아,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누가 나 좀 살려줘……」

그 목소리는 아마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공주, 돌아왔구나」
「응. 다녀왔어, 삿짱」

트리니티의 지하 묘지(카타콤)로 통하는 미로 같은 회랑 한구석, 스쿼드 전용 공간에 있던 것은 아리우스 스쿼드의 리더…… 조마에 사오리. 유려한 흑발과 파란색 이너 컬러가 눈길을 끄는 그녀는 아츠코의 귀환을 맞이했다.

「마담을 속이는 게 힘들었는데」
「그러게요~. 정말 그 아줌마, 끈질겼다구요……」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하자,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두 명의 소녀가 보였다. 이마시노 미사키와 츠치나가 히요리. 둘 다 지쳐 보여, 방금 전까지 마담이니 아줌마니 불리던 존재…… 베아트리체와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근데, 어디 갔었어?」
「샬레」

아츠코에게서 그 말이 나온 순간――세 사람은 숨을 들이켰다. 그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츠코 입에서 샬레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아츠코는 세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 하던 것을 알려주었다.


「선생님은, 그 사람이었어」


아리우스 스쿼드 4명은 모두 기억 소유자(홀더)다.


「……그래」


스쿼드라는 극소수의 커뮤니티이긴 하지만, 그 전원이 회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초가 여러 개 붙는 특이 현상이다. 와카모처럼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상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 시작점은 하카리 아츠코. 그녀가 이 극히 비정상적인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원인은 아츠코의 혈통(로열 블러드), 선생의 주요 사망 원인(게마트리아)이 가까이 있었던 것, 그녀들의 굳건한 유대가 꼽힌다.

원래라면 아츠코만이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의 루프, 선생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녀는 그 기억을 사물을 분별하기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에덴 조약과, 그 이후의 이야기. 너무 즐거워서 울었던 일상, 너무 힘들어서 웃었던 역경. 아리우스 밖에서도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보냈던 모든 기억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고――그 모든 것이 피투성이가 된 참극.


그 기억이 전파된 것이다. 사오리, 미사키, 히요리…… 그리고 이곳에 없는 아즈사에게.
더욱이 단순히 전파된 것이 아니다. 그녀들은 자신이 가장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마치 아츠코의 신비와 연결된 인연, 유대를 확고한 패스 삼아――세상의 아카이브에 접속한 것처럼.


그렇기에 아츠코를 제외한 4명은 각기 다른 루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기반이 되는 아츠코의 기억과 그녀 자신의 기억. 그리고 아츠코는 기억의 접근 경로가 되었기에 어렴풋하게나마 다른 4개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재현성은 전혀 없고, 키보토스 안에서 유일무이한 피를 가진 아츠코와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그녀들이기에 허락된 특권이었다.


「선생님은 변함없었어. 다정하고, 따뜻하고. 하지만, 조금 슬퍼」
「……그런가. 그 사람은…… 아니, 그런 사람이었지, 당신은.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앞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사오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거야. 그러니, 우선은――」

「베아트리체를 제거한다」

미사키의 확고한 신념이 담긴 말에 「아아」하고 사오리는 긍정했다.
몇 번이나 아츠코를 노렸던 그 여자는 결코 살려둘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 할 아리우스 전원의 원수다.

「아즈사를 의심받지 않고 트리니티로 보낼 수 있었던 건 천운이었다…… 덕분에 티파티의 미소노 미카와 접촉할 수 있었지」


아즈사를 스파이로 위장시켜 트리니티로 보내…… 그곳에서 미소노 미카의 협력을 얻었다. 미카도 마찬가지로 기억 소유자(홀더)였기 때문에, 상당히 순조롭게 이야기가 진행되어…… 의심받지 않을 아슬아슬한 선에서 지원을 받고 있었다.

「작전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실행은 가깝다. 그때까지 의심받지 않도록 해라. 마담은 물론, 선생에게도. 그러니, 지금부터 작전 성공까지는…… 선생과 접촉을 금지한다」
「맞아요. 바로 옆에 있는데 만나지 못하는 건 슬프지만…… 들키면 선생님은 분명 협력해주실 거잖아요, 에헤헤」


이 작전을 고안할 때 반드시 지키기로 정했던 규칙――선생을 결코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 규칙은 선생이 그녀들이 알고 있는 그라고 판명된 방금 전…… 절대로 준수해야 할 천칙이 되었다.

「선생에게 떳떳하게 설 수 있도록 한다. 다른 세계라곤 하지만, 우리는 선생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 더는 먹이를 기다리기만 하는 아기 새가 아니니까. 모든 것을 끝낸 그 순간, 선생을 만나러 가자」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런, 단념을 긍정하는 것따위에 의존하지 않겠다.


장비에 새겨진 성경 구절, 허무를 수용하는 말이 아니라――그가 몇 번이나 보내주었던 말을, 그녀들은 엮어간다.


「Per aspera ad astra(고난을 넘어 별들에게로)」



――분명, 기도는 닿을 것이라고.


미카는 선생이 예상했지만, 아리우스도 기억 소유자라니 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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